“9월 들어서면서 우상호, 박범계, 도종환, 조응천, 손혜원 의원이 한자리에 모여 비공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이 TF의 활동은 같은 민주당에서조차 은밀히 진행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1년을 하루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전 원내대표가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와 공동으로 발간한 ‘탄핵, 100일간의 기록’에 담긴 비사의 일부다. 340여 쪽 분량의 백서에는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시점부터 촛불집회, 국정조사 등 탄핵 정국의 숨 가쁜 기록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민주당은 최순실 게이트가 공론화되기 전인 지난해 8월부터 최 씨 관련 개별 정보들을 취합해 확인할 필요성을 느꼈다. 물밑에서 이른바 ‘최순실 TF’를 만들어 활동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의 관계에 대한 각종 의혹이 난무할 때였다.
백서는 긴박하게 이어진다. “이 자리에서 도 의원은 정유라의 이화여대 비리를, 조 의원은 청와대와 재벌 쪽 정보를, 손 의원은 문화계와 차은택 쪽 정보를 내어 놓았다. 정보들을 한곳에 모아서 맞추어 보니 사건의 전모가 완성되기 시작했다. 상황은 세 가지로 정리됐다. 이 세 갈래를 바탕으로 우 원내대표는 TF에 참가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국정감사에서 어떤 방식으로 협공해 나가야 할지에 관한 전략을 수립하고 역할을 분담했다.”
이후 국회 대정부질문과 국정감사에서 그동안 감춰진 국정 농단의 진실이 봇물 터지듯 드러나기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입었던 한복 등을 최 씨가 준비한 정황과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의 허술했던 설립허가 과정 등이 국회에서 밝혀졌다.
백서에는 당시 여당(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실책으로 진실 규명에 속도를 낼 수 있었던 역설적인 상황도 담겼다. 새누리당이 국감을 일주일간 보이콧하면서 야당이 단독으로 진행한 국감에서 최 씨와 관련한 각종 의혹 폭로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1주년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한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민주적인 절차를 크게 어긴 대통령을 가장 민주적인 헌법 절차로 심판한 역사적 성격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한편 탄핵사건 재판장을 맡았던 이정미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55·사법연수원 16기)이 3월 10일 선고 직전 당초 원고에 없었던 ‘화합과 치유의 길’이란 문구를 직접 써넣은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헌재가 최근 발간한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심판 자료집’에는 이 전 재판관이 당시 고심하면서 손글씨로 수정한 16곳의 원고가 포함돼 있다.
이 전 재판관은 주문에 앞서 낭독한 ‘선고에 즈음한 소회’란 원고에서 ‘더 이상의 국론분열과 혼란이 종식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문장을 ‘더 이상의 국론분열과 혼란을 종식시키고 화합과 치유의 길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수기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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