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다루면서 언급 없어… 기념사업회 시정 요구
일각의 ‘과대평가론’은 설득력 없어… 역사인식의 왜곡 철저히 따져봐야
일부 세력이 퍼뜨리는 음해는 사실 여부를 떠나 위력을 발휘한다. 교학사 교과서가 김구를 테러리스트로, 유관순은 여자 깡패로 기술했다는 일부의 주장은 사실무근인 것으로 밝혀졌으나 이달 초 한 고등학교에 등장한 대자보는 여전히 ‘교학사 교과서가 김구를 테러리스트라고 지칭했다’며 채택에 반대하고 있었다.
유관순 열사(1902∼1920)는 3·1운동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다. 지난해 말에는 도쿄의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발견된 자료를 통해 그가 서대문감옥에서 살해당했음이 새로 드러났다. 뜬금없는 ‘여자 깡패’ 논란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가운데 4종(금성출판사 미래엔 천재교육 두산동아)이 유관순을 전혀 다루지 않고 있는 점이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측은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였다. 이 단체는 지난해 12월 “고등학생에게 3·1운동을 가르칠 때는 유관순 열사를 상세히 알도록 해야 마땅한데도 이름 석 자마저 누락시킨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교과서 4종이 유관순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공개 질의를 했다.
해당 출판사에 시정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던 기념사업회는 아직 아무런 답장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하 의원 측은 3개 출판사로부터 “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인물보다는 역사적 사건과 의미를 주로 다루도록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이 교과서들은 유관순은 기술하지 않았지만 다른 인물들은 다루고 있다. 또 이 교과서들을 제외한 나머지 교과서 4종이 유관순을 싣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해답의 실마리는 일각에서 제기해온 ‘유관순 과대평가론’에서 찾을 수 있다. 유관순은 이화학당(현 이화여고) 출신이다. 광복 직후 같은 이화학당 출신으로 이화여고 교장으로 있던 인사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감추기 위해 유관순을 부각시켰다는 주장이 있다. 일제강점기 이화학당이 배출했던 유관순을 과대 포장해 자신의 죄과를 덮으려 했다는 얘기다. 교과서 집필자들이 이런 평가를 의식해서 유관순을 외면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유관순은 과대평가됐다’는 주장은 유관순의 치열했던 삶을 돌아보면 곧바로 옹색해지고 만다. 유관순의 1심 형량은 징역 5년이었던 것으로 몇 해 전 판결문이 발견되면서 밝혀졌다. 2심에서는 3년 형을 선고받았다. 3·1운동을 이끈 33인 중 주요 인사가 3년 형을 받았던 점, 유관순이 17세의 소녀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없이 무거운 형량이었다. 유관순은 1920년 3·1운동 1주년을 맞아 옥중에서 수감자들을 독려해 ‘독립만세’를 다시 외친다. 언제 들어도 감동적인 장면이다. 혹시라도 유관순의 존재를 널리 알린 사람이 친일 인사라고 해도 평가는 흔들릴 수 없다. 오히려 ‘친일’이라는 굴레로 유관순을 깎아내리려는 불순한 의도만 드러날 뿐이다.
그보다는 해당 교과서를 관통하는 역사인식에서 배경을 찾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한국 근현대사 학자들에게는 민중과 민족 사관이 두드러진다. 1980년대 어느 학자는 ‘민족적 사회적 모순을 둘러싼 투쟁의 역사를 민중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최고의 가치는 민족해방과 통일이다. 그동안 일부 교과서들이 북한을 한없이 감싸는 한편 남한을 깎아내린 것도 남한 사회의 성격이 그들이 지향하는 바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인식이 극단으로 치달은 곳이 북한이다. 3·1운동에 대해서도 북한은 3·1인민운동이라고 부르며 김일성 일가가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유관순을 배운 적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북한의 인민운동에서 김일성 이외의 개인은 의미를 지닐 수 없다. 최근 보수학계 쪽에서 우리 학자들이 북한의 역사 해석에 동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새 한국사 교과서 8종은 2월 초부터 판매에 들어갈 예정이다. 일부 편향적 내용은 교육당국의 수정 권고 및 명령을 통해 고쳐진 상태로 출판되지만 그렇다고 서술 방식의 큰 틀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일부 교과서의 유관순 외면이 역사인식의 근본적인 문제를 시사하는 것은 아닌지 철저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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