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이 이념과 진영갈등을 넘어 인신공격을 포함한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8일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겨냥해 선대의 친일·독재를 미화하기 위해 국정화에 나섰다고 주장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김 대표는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하는 것은 정치 금도를 벗어난 무례의 극치”라며 강력 반발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도 “인격 살인적 거짓선동 발언”이라며 “연일 국론 분열을 조장하고 억지 선동의 최선봉에 서서 막말을 쏟아내는 문 대표에게 큰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고 비판했다.
문 대표는 전날 서울 서초구 학부모와의 대화 행사에서 “두 분(박근혜 대통령과 김 대표)의 선대가 친일·독재에 책임 있는 분들”이라고 전제한 뒤 “그 후예들이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것이 이번 교과서 사태의 발단”이라고 규정했다.
새누리당 초·재선의원 모임인 ‘아침소리’도 문 대표의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이완영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장인어른이 빨치산이라 2004년도 최초로 좌편향으로 검정식 역사 교과서로 바꿨느냐”며 원색적인 비난을 했다.
김영우 의원도 “발행되지도 않은 교과서에 대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다는 것은 문 대표가 이야기하는 진보가 사이비 진보였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선친·선대를 운운하면서 교과서 국정화를 왜곡시키는 것은 교과서 연좌제”라고 비판했다.
새정치연합도 ‘역사 전쟁’ 국면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맞대응을 이어갔다. 문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누리당은 국민을 선동하고 불안하게 한 것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의당 심상정 대표, 무소속 천정배 의원과의 3자 연석회의에서도 “걸핏하면 색깔론을 내세우는 게 버릇이 된 새누리당이 이번에는 제 발에 걸려 넘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사 전쟁을 계기로 야권 연대가 가동된 셈이다.
‘교과서 갈등’은 서로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날 발표된 리얼미터 10월 셋째 주(12∼16일) 주간집계에 따르면 새누리당 지지도는 전주 대비 1.1%포인트 오른 42.8%를 기록했다. 새정치연합 지지도도 0.6%포인트 올라 26.3%가 됐다.
다만 예산정국을 앞두고 여당의 수도권 의원을 중심으로 공개적인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등 당내 갈등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재선의 김용태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부가 (국정화를) 일방적으로 선언해놓고 따라오라는 식이니까 의원들은 당혹스럽고 한편으로는 황당하기까지 하다”며 “역사 전쟁에 매몰돼 다른 일을 못 한다면 중도층과 젊은층에게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유승민, 정두언 의원 역시 국정화가 세계적인 추세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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