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몽룡 교수는 원로 중의 원로이고 거물인데도 못 견딜 정도로 회유와 외압이 들어오는데, 중진급이나 소장급이 그러면 버티겠어요?”(강규형 명지대 교수)
“누가 이 뜨거운 감자를 먹고 이가 안 빠질지 나도 궁금합니다. 김정배 위원장 전화도 일부러 안 받았어요.”(50대 A 교수)
국정 역사 교과서 집필진 구성이 예상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진보 성향은 물론이고 보수 중도 성향 학자들까지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섣불리 참여했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며 참여를 거부하고 있는 것. 여기에 일부 보수 성향 학자는 “내가 보수인데 되레 국정 교과서가 오해를 받는 게 싫다”며 참여를 고사하고 있다.
일부 교수 중에는 집필진 참여 제의를 받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참여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원로 교수는 “집필 제안을 한 사람들에게 내가 집필진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렵고, 조언을 구한다면 의견을 낼 수는 있다고 말했다”며 “교과서 문제가 정치적인 이슈가 돼 버렸고, 내가 교수인데 학생들이 시위하는 상황에서 참여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원로 교수도 “집필진 제의를 받았지만 아직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고, 참여한다고 해도 학회원들의 저항이 만만찮을 것 같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표시했다.
5일 본보 취재에 응한 학자들은 “역사학계 교수 대부분이 국정 교과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때문에 공개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나서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70대 B 교수는 “근현대사 전공 교수들은 대부분 안 하려고 할 것”이라며 “누가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이걸 하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 “지금은 너무 정치적 문제로 번져 명망 있는 학자가 위험과 모함을 무릅쓰고 나서기는 굉장히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정 교과서 편찬을 맡은 국사편찬위원회는 4∼9일 집필진 공모 지원을 받을 계획이지만 5일까지 지원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편 관계자는 “반대 여론이 거세지만 교과서 제작에 참여하려는 전문가들도 있다”고 말했다.
국편은 25명을 공모로 뽑는 등 총 36명 안팎의 집필진을 구성할 계획이다. 하지만 현재 학계 분위기로 봐서는 공모로 명망 있는 집필진 25명을 모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역사학계의 한 원로 교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스스로 집필하겠다고 지원하는 학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좋은 집필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편이 더욱 적극적으로 초빙에 나서야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대표 집필자로 참여하기로 한 2명의 원로 학자만으로는 균형 잡힌 집필진으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4일 고대사와 상고사 대표 집필자로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77)와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70)가 참여하겠다고 나섰지만 모두 70대 원로 학자라는 점에서 ‘노장청과 좌우를 아우르는 집필진’보다는 구성되더라도 원로 중심이 아니겠느냐는 것.
또 지나치게 좌우 극단의 이념적 성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학자들도 교과서 집필진으로는 피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집필자 구인난에 시달리다 자칫 극우로 평가받는 집필진으로 구성될 경우 역풍이 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집필진 구성 못지않게 편찬 기준을 완성하는 것도 중요한 사안이다.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이나 북한에 대한 기술 등 민감한 쟁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국편은 9월 공청회를 열어 역사과 편찬 기준 시안을 내놓았다. 국편은 이를 보완하고 교육부의 심의를 거쳐 11월 말에 편찬 기준을 확정한 후 공개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황교안 국무총리가 3일 국정화 확정 방침을 발표하면서 편향 사례로 들었던 쟁점들이 집필기준에 어떻게 반영될지가 관심사다. 김정배 위원장은 4일 기자회견에서 “황 총리가 언급한 부분들이 편찬 기준에 다 들어갈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9월 발표된 시안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관련해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인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행 헌법과 같은 원칙이다. 그러나 황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일부 교과서가 1948년에 남한은 정부 수립, 북한은 국가 수립이라고 기술한 것이 대표적인 좌편향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는 해석에 따라 뉴라이트 등 일부 우파 학자가 1948년을 건국 시점으로 정해야 한다는 이른바 ‘건국절 논란’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편이 편찬 기준 시안과 달리 확정안에서는 1948년을 건국 시점으로 규정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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