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또 쪼개졌다. 국정교과서 때문이다. 한쪽에선 나오지도 않았는데 왜 난리냐 하고, 한쪽에선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느냐며 반발한다. 이토록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경우 사람들은 쉽게 재판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합리적인 토론으로 정치권에서 정리해야 할 괴상한 문제가 사법기능에 떠넘겨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요컨대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는 공히 심각한 문제이며, 결코 민주주의 발전의 징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중요한 건 상식과 헌법정신이다.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누가 내 편인가만을 따져 논리가 사라지니, 결국 모든 것을 힘이 결정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그간 인류가 발전시킨 문명을 인정한다면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말처럼 이 문제는 ‘진실과 거짓의 투쟁’인 것이다.
분명히 하자. 국정교과서는 내용 면에서 친일이나 독재를 미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반대가 많은 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지적한 것처럼 “어떠한 경우든 역사에 관한 것은 정권이 재단해선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역사학자의 90%를 좌파로 규정한 정권이 만드는 교과서라면 더더욱 우려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통령이 결심한 일이라는 이유로 모든 공직자가 돌격대원이 돼 행정절차 일체를 형해화하는 것은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하물며 몰래 숨어 작업하다 감금당했다며 우기는 꼴은 정말 감내하기 어렵다.
헌법재판소(헌재)는 1992년 이미 국정교과서제도 자체가 헌법 위반이라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를 밝히면서도 헌법이 용인할 수 있는 한계를 제시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나치정권이 ‘생물’과 ‘국사’를 국정교과서로 정한 역사를 생각해보면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교과서의 정신을 살필 수 있다.
헌재는 “(국정교과서제도가) 위헌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제도가 교육이념과 교육현실에 비추어볼 때 가장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제도냐 하는 문제는 별개의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별한 사정에 의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정제도보다 검·인정제도를, 검·인정제도보다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것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이념을 고양하고 아울러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국정제도를 채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교과 내용의 다양성과 학생들의 지식습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교과서만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교과서 내용에도 학설의 대립이 있고, 어느 한쪽의 학설을 택하는 데 문제점이 있는 경우, 예컨대 국사의 경우 어떤 학설이 옳다고 확정할 수 없고 다양한 견해가 그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오늘의 논란에 명백한 해답을 주고 있다. 당시에도 변정수 재판관은 “정부로 하여금 정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독점적으로 교화하여 청소년을 편협하고 보수적으로 의식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어서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남겼다.
23년 전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만든 이 판례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과 답변은 무엇일까. 이러한 고민과 응답을 일절 배제하고 “북한도 교과서가 하나이니 우리도 하나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하나의 논리적 주장이라 불러야 할까.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5.11.11.~11.17|1012호 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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