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회에서 국정 역사교과서의 강행 방침 철회를 시사해 파문을 일으킨 교육부는 국정 역사교과서 공개를 하루 앞둔 27일 ‘국정화 철회’ 가능성을 일단 부인하며 교과서의 내용을 보고 판단해줄 것을 당부했다. 또 국정화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는 시각도 부인했다.
○ “내용 보고 판단해 달라”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7일 기자간담회에서 당장 국정화 철회 등은 하지 않으며 대안을 선택할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교과서에 대한 의견 수렴이 종료되는 다음 달 23일까지 하겠다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양질의 교과서를 만들었으니 국민께서 내용을 보시고 현명한 판단을 하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교육부가 청와대와 상의 없이 국정화 철회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 등에 대해 이 부총리는 “원래 내년 3월에 공개하는 게 처음에 제시했던 시점이고 원칙적으로 정해진 방향”이라면서 “다만 교육부가 판단한 입장을 청와대와 조율했고, 청와대가 그 점에 대한 검토를 하겠다는 수준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 방침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교육부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당황한 청와대는 이 부총리와 김용승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이 26일 청와대에서 만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25일의 국회 발언에 대해 “국정화 방침을 철회하겠다는 취지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청와대와 교육부는 교과서 현장 검토본 공개 후 의견 수렴을 하면서 현장 적용 방안 등에 계속 협의해나가기로 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방침을 정해서는 안 되며 충분히 보고하고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청와대는 국정화를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단 갈등만 봉합하고 시간을 벌어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또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 박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기 때문에 이후 교육부가 국정화 재검토를 추진할 경우 청와대가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건국 시기’ 두고 다시 논란
25일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최대 쟁점인 ‘건국 시기’와 관련해 국정 교과서가 기존 검정 교과서의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 대신에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게 확인되면서 논란이 다시 촉발되고 있다.
이 표현에 대해 이 부총리는 “건국은 한 시점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라며 “1919년 3·1운동부터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 독립운동을 통해 1945년 독립을 거쳐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이 완성될 때까지 모든 활동이 건국 활동”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도 “1919년에 건국됐다고 보는 진보 진영과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보수 진영의 입장을 아우르는 표현으로 ‘대한민국 수립’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진보 진영은 반발했다. 이준식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뉴라이트 진영은 1948년에 방점을 찍고 싶어 그 이전은 준비 기간으로 보는데 교육부가 이런 주장을 교과서에 쓰고 있다”며 “1919년 대한민국이 출범했다는 게 학계의 통설인데 교육부가 왜 소수 의견을 교과서에 싣느냐”고 말했다.
반면 보수 성향의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1919년에 시작돼 1948년에 마무리된다고 보면 그 시각은 나름대로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느 한쪽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는 올해 초 펴낸 ‘미래를 여는 우리 근현대사’에서 “1948년에 대한민국은 ‘재건’이요, ‘정부 수립’인 동시에 ‘새로운 국가의 건설’이기도 했으므로 지나치게 양자택일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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