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공개된 국정 고교 한국사 교과서와 중학교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본 역사학자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보수 성향 학자들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살렸다”고 했지만 진보 성향 학자들은 “뉴라이트 교과서”라고 했다. 현대사의 주요 쟁점에 대한 학계 의견을 정리했다. ○ 1948년 대한민국 수립?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1948. 8. 15.).”
국정 교과서는 편찬 기준에 따라 기존 검정 교과서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서 ‘정부’를 뺀 채 이렇게 서술했다.
국정 교과서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밝혀 온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48년 ‘건국’이라고 표현하지 않아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의미를 살렸다”며 “정부 수립으로 대한민국이 출범했다는 의미를 담아 중립적으로 서술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는 “헌법정신과 학계 통설은 1919년 대한민국이 수립됐다는 것”이라며 “국정 교과서의 이 같은 표현은 1948년 8월 15일 건국절 제정 추진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는 “2008년 뉴라이트 성향의 교과서 포럼이 내놓은 대안교과서와 내용이 유사하다”고 했다. ○ 해방공간은?
분단 과정과 친일파 청산 등의 서술에 대한 평가도 나뉘었다. 강 교수는 “1946년 2월 이미 38선 이북에 북조선인민위원회라는 사실상의 단독 정부가 구성돼 있었다는 점을 잘 살렸다”며 “북한이 토지개혁에 성공했고, 한국은 실패했다는 식의 서술도 교정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정 교과서가 일부 검정 교과서에 실렸던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이 총선거 감시와 협의를 실시할 수 있었던 남한지역에서 … 합법정부가 수립됐다’는 1948년 유엔 결의안 내용을 삭제한 건 잘못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교육부는 “일부 검정 교과서의 잘못을 바로잡은 것”이라고 했지만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향후 통일 국면에서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어 결의안 내용을 그대로 전달해야 했다”고 했다.
국정 교과서는 친일파 청산과 관련해 “반민특위가 구성됐지만 이승만 정부가 소극적이었고, 일부 친일 경력이 있는 경찰이 저항해 어려움을 겪다 해체됐다. 실형이 선고된 것은 10여 건에 그쳤다”고 썼다. 이전 검정 교과서에서는 “친일잔재 청산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서술과 함께 이승만 정부가 특위 활동을 주도한 국회의원들을 간첩 혐의로 구속했다는 점을 다루기도 했다. 홍석률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는 “국정 교과서는 친일파 청산이 안 됐다는 점과 이후 친일 경찰이 온존하면서 야기한 문제에 대한 서술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 6·25전쟁 “인권 관점 부족”
국정 교과서는 “북한의 남침에는 소련과 중국이 깊게 관여하였다”는 서술과 함께 ‘소련 군사 고문관이 북한군에 넘겨준 선제 타격 계획’을 시각 자료로 넣었다. 이지수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전쟁 발발 원인을 객관적으로 기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 보도연맹 사건을 비롯한 전쟁 중 발생한 민간인 학살을 찾아볼 수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김태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는 “보도연맹 학살은 우파 성향의 예전 교학사판 한국사 교과서에도 등장했던 내용인데 이번에 빠진 건 놀라운 일”이라며 “독일이 홀로코스트를 역사 교육의 중심에 놓는 것처럼 후속 세대에 인권과 평화의 관점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관련 서술이 꼭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석률 교수는 국정 교과서 전반에 대해 “내용은 자유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형식이 단일한 역사의식을 강요하는 국정이라는 건 이율배반 아니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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