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 낙관적 생각으로 창업’… 청문회 출석 저커버그의 반성
리더는 냉혹한 현실 직시해야
한국 사회의 문제적 징후들… “계획대로 일 안 풀릴 때는 목표가 아닌 계획을 바꾸라”
미국 의회 청문회에 양복 차림으로 등장한 페이스북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를 보면서, 왠지 고유한 아우라가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늘 입던 회색 티셔츠와 청바지에서 풍기던 자유로운 영혼의 이미지를 찾을 수 없었다. 정보기술(IT) 거물이 아닌, 그저 1984년생 그 또래 샐러리맨처럼 평범해 보였다. 그만큼 낯설었다.
청문회에서 그는 세계를 뒤흔든 데이터 유출과 관련해 “내 개인정보도 털렸다”고 털어놓았다. 그 전에는 “이상적이고 낙관적 생각으로 창업했으나 사용자 프라이버시를 충분하게 보호하지 못했던 것은 모두 내 잘못”이라고 뼈아픈 자기점검도 했다. 반성문 같은 진술에서 ‘이상적이고 낙관적 생각’이 언급된 점은 의미심장하다. 근거 없는 낙관만으로 이상을 온전히 달성할 수는 없다. 도구를 만들고 고객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동시에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사용된다는 확신을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차가운 현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스스로의 안이한 태도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사실 리더가 이상적이고 낙관적이 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내가 틀릴 리 없다는 자기 확신으로 무장하고, 주변에서 울리는 달콤한 이야기에 취하면 상황이 장밋빛으로 보이니까.
경영의 고전이 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는 성공할 수 있고 결국 성공하리라는 불굴의 믿음을 유지해야 한다. 동시에 닥친 현실 속에서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할 수 있는 규율을 가져야만 한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되 희망을 잃지 않는 것, 이른바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강조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짐 콜린스는 급변하는 환경에서 살아남는 또 다른 조언도 남겼다. 사람이 중요한 자산이 아니라 ‘적합한’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그래서 위대한 리더는 자신과 더불어 변화를 만들 ‘적합한’ 사람을 버스에 태우고, ‘부적합한’ 사람은 버스에서 내리게 한 뒤 갈 곳을 정한다고.
한국 사회의 문제적 징후가 한둘이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이 크게 실망하고 있는 것은 지난 정부나 새 정부나 ‘적합한 인물을 적합한 자리에’ 원칙에 개의치 않는 점이다. 야당이 내건 문구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는 ‘셀프 디스’처럼, 리더 독단으로 부적격자를 무임승차시킨 대가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어제는 금융감독원장이 과거의 ‘셀프후원 의혹’에 대한 선거관리위원회의 ‘위법’ 판정을 받고서도 “결정에 납득할 수 없다”며 마지못해 물러났다. 남에게 서슬 퍼런 잣대를 휘두른 사람이 자신의 도덕성 결핍에 얼마나 무감각한지 만천하에 또 한번 커밍아웃하고서. 그가 몸담았던 시민단체까지 다시 보게 되는 이유다.
애당초 문제적 인물을 거르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굳이 외부 판단을 빌려 그만두게 하는 모양새도 여태껏 본 적 없는 풍경이다. 유명무실한 미세먼지 대책도 그렇고, ‘공론화’라는 구두선을 띄워놓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입제도 개편도 그렇고, 정책 불신이 팽배해도 장관들은 태평하다. 버스 운행을 책임진 사람이라면 지금부터라도 버스에서 누굴 내리게 할 것인지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단추가 될 것이다. 권력을 쥔 사람들은 유리한 패를 쥐었다고 반드시 게임에서 이기는 법은 아니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얼마 전 영국 BBC는 10대 창업자들을 조명했다. 그중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16세 소녀는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목표가 아니라 계획을 바꿔야 한다”고 경영자로서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운동 경기에서 선수 교체와 전술 변경은 언제나 가능하다. 하지만 정작 골문이 어디에 있는지를 잊는다면? 그 순간 게임 끝이다. 교육개혁과 금융개혁은 목표인가 아니면 혹시 내 편을 감싸고 지켜주기 위한 방편인가. 남북 정상회담은 그 자체로 목표인가 아니면 완전한 비핵화가 진정한 목표인가.
‘뭣이 중헌디’를 제대로 결정하는 것이 리더의 책무다. 그리고 이를 점검하는 것은 투표권을 가진 일반 국민의 권한이다. 분명, 그 선택들이 리더의 ‘운명’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운명을 갈라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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