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62)는 22일 오후 다른 정당 원내대표들과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삼성서울병원으로 가서 노모를 병문안했다. 이어 잠시 국회에 들렀다가 동생 부부가 사는 서울 중구의 아파트로 가서 5분간 머물렀지만 동생을 만나지는 않았다. 서울 강서구 자택으로 귀가한 노 의원을 만난 부인 김지선 씨는 이날이 남편과의 ‘마지막 밤’이 될 것이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노 의원은 23일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다.
○ 이틀 연속 동생 집 찾았지만 동생은 안 만나
노 의원은 투신을 하기 직전인 23일 오전 9시 33분경 다시 동생의 집 앞까지 갔다. 하지만 초인종은 누르지 않았다. 당시 집 안에 있던 동생은 형이 현관문 앞까지 찾아온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틀 연속 동생 집 근처까지 와서 정작 동생은 만나지 않은 것이다. 노 의원은 동생이 사는 아파트 17층에서 18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옷과 유서를 남겨두고 복도 창문을 통해 몸을 던졌다.
앞서 오전 8시 5분경 자택에서 나온 노 의원은 8시 40분경 국회에 들렀지만 차에서 내리지 않고 수행비서와 차 안에서 25분을 보냈다. 수행비서는 “노 대표가 차 안에서 ‘피곤하지, 고생이 많다’고 밝게 말씀하셔서 자살의 기미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 9시 반에는 당 상무위원회 참석이 예정돼 있었지만 보좌진을 통해 모두발언만 배포하고 불참했다.
노 의원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경비원 김모 씨는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던 중 ‘퍽’ 소리가 나서 가보니 노 의원이 엎드린 채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아파트 주민 박모 씨(75)는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해 급하게 인공호흡을 했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 “누굴 원망하랴. 책임 무겁다”
노 의원은 자필로 가족에게 A4용지 1장짜리 유서 2통을 썼고 소속 당인 정의당에는 2장짜리 유서 1통을 남겼다. 노 의원은 유서를 통해 ‘드루킹’ 김동원 씨(49·수감 중) 측으로부터 4000만 원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청탁과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밟아야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며 “누굴 원망하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며 “무엇보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고 당원과 이정미 당 대표에게 사과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당부드린다”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노 의원이 가족에게 남긴 유서에는 “먼저 떠나게 돼 미안하다”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 “안타깝다” 애도 이어져
노 의원의 지인들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노 의원의 투신 소식을 듣고 아파트 현장으로 달려온 노동운동 동료 임모 씨(59)는 “노 의원 동생에게 급히 전화했는데 형이 자살을 할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면서 “판단력이 냉철하고 전혀 그럴 분이 아닌데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도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노 의원과 인천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활동을 함께했다는 A 씨는 “노 의원이 이미 마음의 정리를 하고 어머니 병문안을 다녀온 뒤 유서를 작성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노 의원의 지역구가 속한 정의당 경남도당은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이 참여하는 ‘고 노회찬 국회의원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날부터 발인일인 27일까지를 추모 기간으로 정했다. 노 의원의 장지는 경기 남양주시 마석모란공원으로 정해졌다.
윤다빈 empty@donga.com / 창원=강정훈 기자 박희영 인턴기자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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