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33)이 3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청와대의 ‘스크린’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대면보고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이번 정부라면 최소한 내부고발을 들어주려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말하면 진지하게 들어주고 재발방지 얘기를 할 줄 알았다”고도 했다.
신 전 사무관은 이날 오전 7시경 친구에게 “요즘 일로 힘들다” “행복해라” 등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잠적했다. 그는 이어 모교인 고려대 커뮤니티 ‘고파스’에 ‘마지막 글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그간의 경과와 본인의 심경, 자살을 시도 중인 과정 등을 알렸다.
신 전 사무관의 지인 등이 글을 보고 신고해 이날 낮 12시 40분경 경찰이 서울 관악구의 한 모텔에서 그를 발견했다. 경찰 관계자는 “목에 헤어드라이어 줄을 감은 것으로 추정되는 피멍이 있었지만 맥박 등 건강상 이상은 없었다”고 말했다.
신 전 사무관은 고파스에 올린 글에서 “박근혜, 이명박 정부에서 똑같이 행동(내부고발)했으면 여론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현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을 비판하자 본인에 대한 공격과 음해가 제기돼 극단적인 선택을 했음을 내비친 것이다. 그는 “내부고발을 인정해주고 당연시하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며 자신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일부 여론에 상처 받았음을 드러내 보였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모범시민’만 공익제보자여야 하거나 그래야 보호받을 수 있다면 표현의 자유를 질식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 전 사무관은 정부 내 정책결정 과정의 문제에 대해서도 재차 지적했다. 그는 “원칙상 행정부 서열 3위인 (김동연) 부총리가 대통령 보고를 원하는 대로 못 들어가고 있는 게 문제가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30일 고파스와 이달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도 같은 문제를 꼬집었다. 김 전 부총리가 적자국채 발행 건으로 청와대에 대통령 월례보고를 요청하자 청와대가 “대통령 보고가 필요 없다. 이미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것으로) 결정돼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돼 되돌릴 수 없으니 기존 계획대로 발행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독대 보고 외에도 국무회의나 대통령 주재 행사, 해외 순방 등을 통해 대통령과 충분히 소통했다”고 해명했다. 또 국채 상환 취소와 적자국채 발행 시도 등 겉으로 나타난 결과는 맞지만 논의 과정에 대한 왜곡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법조계에서는 기재부가 신 전 사무관을 공무상 비밀누설을 이유로 고발한 데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법원은 비밀 자체를 보호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비밀 누설 시 국가의 기능이 위협받는 정도에 초점을 맞춘다. 한 부장검사는 “1998년 ‘옷값 대납 사건’의 검찰 내사 결과 보고서가 유출됐을 때에도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성립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 전 사무관의 글과 자살 시도로 고려대에서는 현 정부에 대항해 “촛불을 다시 들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대학 시절부터 신재민과 함께한 선후배 일동’이라는 사람들은 호소문에서 “신 전 사무관이 뉴라이트 출신이라는 등 사실무근의 가짜 뉴스가 유포되고 있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들은 또 신 전 사무관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자신을 외면했다고 한 데 대해서도 오해가 있었다고 대신 사과했다.
신 전 사무관의 부모도 이날 사과문을 통해 “본인이 옳은 일이라 생각하고 나선 일이 생각보다 너무 커져 버렸다”며 “국민 여러분이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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