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주미대사관 소속 외교관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통화 내용을 유출한 사실이 적발되면서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민감한 외교안보 관련 정보를 다루는 대사관 직원들을 상대로 집중 감찰이 진행 중인 가운데 “앞으로 미국과의 정보 공유가 더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청와대가 두 정상의 통화 내용을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유출한 외교관 K 씨를 적발한 사실이 알려진 22일(현지 시간) 주미대사관은 폭탄을 맞은 분위기였다. 대사관 직원 대부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소셜미디어와 메신저 사용도 일시 중단했다. 간신히 전화가 연결된 일부 외교관들은 “할 말이 없다”고 극도로 말을 아꼈다.
대사관은 현재 정무 의회 국방 등 주요 사안을 담당하는 직원들을 상대로 추가 감찰을 진행하고 있다. 이달 말 감사원의 감사도 예정돼 있다. 감찰의 강도가 상상 이상으로 셀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 국무부도 이번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양국 협의 과정 및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향후 미국이 한국과 민감한 정보를 공유하려 들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거 몇 차례 정보 유출 사건에 대해 미국 정부가 한국 쪽 관계자들에 의혹어린 시선을 보내며 공유를 꺼린 일도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감한 내용을 발표 직전에야 한국에 알려주거나, 주미대사관 측이 미국 정부에 “제3국 언론이 이미 알고 있다”며 추궁하고 압박해야 마지못해 뒤늦게 공유하는 식이었다. 한 외교소식통은 “주미대사관 전체의 신뢰 저하로 이어질까 걱정이다. 미국 정보를 받기 더 어려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국무부 관계자는 “외교기밀 유출은 문제가 되는 사안”이라며 “미국에는 외교기밀 유출을 막기 위한 여러 법과 규정이 있다. 이를 어긴 외교관은 해임되거나 감옥에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기밀을 유출한 사람에게 10년 안팎의 징역에 처하는 등 강하게 처벌하고 있다. 다만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린 사례와 실수로 언급한 사례를 구분한다. 워싱턴의 유명 로펌 ‘넬슨 멀린스’의 샘 로젠탈 변호사는 기자에게 “기밀 수준, 고의성, 비밀취급 권한 등에 따라 처벌 수위가 크게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는 과거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요약해 공개했지만 지난해 7월부터는 이를 중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2월 맬컴 턴불 당시 호주 총리와의 통화 때 턴불 총리에게 ‘최악의 통화’ ‘멍청한 협상’ 등 막말을 했던 것이 알려져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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