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외교관 K 씨가 한미 정상 통화 내용을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에게 유출한 사건과 관련해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직접 사과하면서, 이제 여권 안팎의 관심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쏠리고 있다. 여권 내에서는 “대통령이 사과까지 한 마당에 강 장관이 어떤 식으로든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청와대는 각종 산적한 외교 현안과 대안 부재 등의 이유로 당장 강 장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강경화 딜레마’에 빠졌다는 말도 들린다. ○ 이례적인 文의 사과, 화살은 강경화로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두 번째로 현 정부에서 벌어진 일을 놓고 사과한 것은 미국 정상과의 통화 내용이 유출된 초유의 사건에 대한 1차적 책임을 인정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문 대통령은 “변명의 여지없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현 정부에서 빚어진 사안에 대해 사과한 것은 지난해 7월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을 달성하겠다는 대선 공약과 관련해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처럼 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직접 사과한 만큼 사건의 진원지인 외교부는 대대적인 쇄신 태풍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외교부의 수장인 강 장관이 있다. 한 여당 의원은 “의전 실수와 설화에 이어 이번 사건까지 더해지면서 강 장관을 바꿀 이유는 차고 넘친다”며 “이 정도면 ‘사퇴 마일리지’가 쌓인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강 장관은 이낙연 국무총리를 사이에 두고 문 대통령의 오른쪽 옆에 앉았다. 면전에서 대통령의 사과를 들은 강 장관의 표정은 굳었다. 강 장관은 국무회의에서 “심려와 누를 끼친 것에 죄송하다”며 “관련자를 엄중히 문책하고, 문건 보안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책임지고 외교부를 추스르겠다는 것으로 당장은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청와대와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강 장관을 교체하려고 해도 산적한 현안에 즉시 대응할 대타가 마땅하지 않다는 게 현실적인 고민이다. 다음 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방한 등 굵직한 외교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실무 전담할 외교 수장을 교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 靑, “강 장관 교체는 대통령 결심에 달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이후에는 강 장관 교체가 가시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수습을 마무리 짓고 다음 번 개각에서 물러나는 것이 청와대에나 강 장관에게나 가장 합리적인 수순”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장 (교체는) 논의된 적도 없고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추후 거취는 대통령의 결심에 달린 것”이라며 교체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여권에서는 “강 장관을 바꿀 수 없다면 조윤제 주미 대사라도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도 “주미 대사 같은 경우 책임이 있는지 살펴봐야 될 문제”라고 했다. 하지만 조 대사는 3월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다른 4강 대사가 일제히 교체될 때도 자리를 지킬 만큼 문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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