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지대’서 폭력 곪아터져… 민간감시단에 철책 열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6일 03시 00분


[제2의 윤일병을 구하라]
<下>인간 대접하는 군대로 ―民도 참여하는 ‘인권 방패’ 만들자
외부의 감시 거부하는 軍체제가 근본문제
“군인은 제복입은 시민”… 독일처럼 軍개혁 필요
독립된 민간 옴부즈맨에 방문조사 권한 보장을

국회, 윤일병 내무반 현장조사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5일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이 발생한 경기 연천군 제28사단 977포병대대 의무생활관을 방문해 현장조사를 벌였다. 헌병 관계자가 생활관에서 당시 윤 일병이 구타당해 숨지는 과정을 몸짓을 활용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연천=국회사진기자단
국회, 윤일병 내무반 현장조사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5일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이 발생한 경기 연천군 제28사단 977포병대대 의무생활관을 방문해 현장조사를 벌였다. 헌병 관계자가 생활관에서 당시 윤 일병이 구타당해 숨지는 과정을 몸짓을 활용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연천=국회사진기자단
《 너무 늦게 알았다. 우리는 동료 병사의 가혹행위와 간부의 방치, 군 당국의 무관심 속에서 윤 일병, 이 상병, 임 이병을 구하지 못했다. 때늦은 파장 끝에 확인된 것은 수많은 군 문화 개선 구호 속에서도 병사들의 인권은 철책 속에 감춰진 채 짓밟혀 왔다는 사실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현직 장병과 군 관련 단체 및 기관, 전문가에게 자문했다. 이들은 ‘제2의 윤 일병’을 구하기 위해 ‘민간 참여’와 ‘3중 보호막’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

윤 일병이 군홧발 아래 스러졌던 28사단 포병연대 의무대는 본부대와 물리적으로 떨어진 ‘고립 지역’이었다. 간부 여럿이 함께 주둔하는 다른 부대와 달리 문제의 의무대에서 책임 간부는 폭행에 가담했던 하사 한 명뿐이었다. 사단장과 군단장조차 ‘사각지대’로 표현하는 곳이었다. 임 이병이 성 고문을 당했던 곳도 본대와 떨어진 의무대였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외부와의 차단’ 조건이 가장 심각했던 곳에서 주로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철저히 고립된 상황에서 외부 감시를 받지 않는 군 체제가 근본 문제이고, 그 정도가 특히 심각했던 곳에서 ‘위기 신호’가 실제 폭발한 셈이다.

“군인은 ‘제복 입은 시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대적인 개혁개방을 실시한 독일 군인 법제의 기본 원칙이다. 일시적으로 제복을 입었을 뿐 시민의 기본 인권은 보장된다는 이 원칙에 따라 독일 군대는 민간이 참여하는 공식 감시기관의 통제를 받는다. 1957년 공포된 ‘연방의회 군사 옴부즈맨에 관한 법률’은 의회 직속 기관인 군사 옴부즈맨에서 군 복무자의 청원을 받아 관련 정보를 군으로부터 제출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35세 이상 독일 국민이면 누구나 추천을 받아 옴부즈맨으로 활동할 수 있다. 한발 나아가 사전 고지 없이 군부대 현장을 직접 방문 조사할 수 있는 권한도 보장돼 있다.

그러나 한국군에 이 같은 ‘개방’은 멀고 먼 남의 나라 이야기다. 2005년 28사단 총기난사 사건 이후 설치된 국내 군 옴부즈맨은 실질적 권한 없이 방치되고 있다. 잇따르는 사건으로 군의 곪은 부분을 외부에 개방해 감시를 받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단순히 ‘제도 정비’ 단계에서 민간 전문가에게 자문하는 게 아니라 실질 운영에 외부의 독립적인 인사를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방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해 온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군이 ‘오픈(개방)’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군 내부 상담관들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심리 검사 자문은 외부 전문가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해 왔지만 실제 군 내부에서의 운영에 일반 민간인 전문가들이 투입돼야 실질적인 문제가 드러날 수 있다”고 곽 교수는 지적했다.

박성남 국가인권위원회 기획조사팀장은 “국방부 차원에서 외부 기관과의 협의체를 수용하고 스스로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 일병 사고 이후 군 당국의 육군 가혹행위 전수 조사에서 유사 사례 3900건이 적발됐지만 각 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징계 처분 결과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꼭꼭 숨기는’ 군 풍토에 분노한 일각에선 “이런 식으로 내부에서 처리할 게 아니라 아예 매일의 자살 사고 병사 수를 국방부 홈페이지에 게재해야 한다” “자꾸 이런 문제가 반복된다면 모병제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 병사부터 장교까지 부대에 ‘3중 보호막’을 ▼

① 구타 보고도 신고 안하면 ‘공범 처벌’ 인식 확산
② 병사들 생활 잘아는 부사관에 인권교육 철저히
③ 적극적으로 진실 밝히는 장교엔 人事 인센티브


현역 장병과 전문가들은 군부대 내의 각 구성원들도 구타·가혹행위 감시자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①최초 목격자, 동료 병사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사관학교에선 장교들이 자격이나 품위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때 이를 목격한 동료에게 ‘의무 신고’ 책임을 지운다. 신고를 하지 않으면 그 동료도 처벌 대상이 되는 제도를 일선 병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일병 사건을 방조하고 딱 한 대 때렸다가 불구속 기소된 A 일병의 사례처럼 단순 방조 수준의 행위도 ‘공범’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동료 병사들이 ‘1차 보호막’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②병사와 부대끼는 부사관 교육 확대

행정보급관·의무지원관 등 일반 병사와 접촉이 가장 많은 간부들은 원사·상사·중사·하사 계급에 해당하는 부사관이다. 부사관들은 병사와 병영 생활을 공유하는 부분이 많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핵심 간부다. 병사 근무 중 지원한 부사관도 많아 병사 실태를 잘 파악한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도 그러면서 배웠다”는 식으로 넘어가거나 오히려 폭행에 가담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김대영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하급 간부는 행정이나 작업 업무에 치이다 병사관리에 신경을 못 쓰는 구조”라며 “부사관들에게도 군부대 폭력 사례에 대해 철저히 교육하고 리더십을 심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성남 인권위 기획조사팀장은 “국방부에서 군 간부 양성이나 재교육 시 의무 과목으로 지정하는 ‘통제 과목’들이 있다. 인권 과목은 수년 전 이 과목에서 제외됐다”며 “간부급들에 대해서도 병영 문화와 인권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③장교에겐 문책보다 ‘진실 보고’ 장려해야

직접적인 병사관리 책임은 소위 중위 계급에 해당하는 소대장 중대장에게 있다. 하지만 부대 안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보직해임 등 처벌이 뒤따르고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관행 때문에 장교들이 진실을 밝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당장 사건을 숨기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 부대관리훈령 제5조 1항의 ‘부대지휘에 관한 모든 책임은 지휘관에게 있다’는 원칙에서 이 같은 관행이 이어져 온 것이다.

문무철 국민권익위원회 국방보훈민원과 조사관은 “실제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적극 대응하고 해결한 지휘관은 오히려 승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군 인사법이나 훈령 등의 개정, 부대별 내부 지침 등을 통해 적절히 사고 처리를 한 지휘관에게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단지 사고가 났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문화를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 사고에 대해 윗선 지휘관이 책임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현장 지휘관들이 상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진실을 외면하는 현상은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강원 육군 모 부대 예비역 장교 A 씨(26)는 “장교들은 부하 병사들을 도구로 취급하지 말고 인격체로 존중하며 책임감을 갖고 돌봐야 한다”며 “병사들의 생활 속 문제의 실체를 상관에게 보고하는 것 역시 장교의 책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윤일병 사건#군 가혹행위#병사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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