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군 첫 全軍 특별인권교육]모든 일과 중단하고 실태교육-토론
“병사간 ‘야, 너’ 대신 이름 부르자”… “性的 농담 처벌 대상인지 몰랐다”
“윤일병 가해병사 살인죄 적용을”… 국방부 검찰단 공소의견 제시
육군 28사단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의 파문이 커지는 가운데 8일 열린 육해공군 모든 부대의 특별인권교육은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전군의 지휘관과 병사가 훈련 등 모든 일과를 중단하고 교육에 참여한 것은 1948년 국군 창건 이래 66년 만에 처음이다.
30사단 법무참모 김규화 대위(29)는 신병교육대대 강당에서 간부 및 장병과 신병 260여 명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 “‘군기를 잡으려면 폭언도 괜찮다. 어느 정도 인권 침해는 가능하다’는 생각이 지금의 사태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인권교육은 국방부의 특별 지시가 하달된 지 하루 만에 급조된 것이다. 교육의 분위기는 어색하고 모범답안 같은 얘기들만 되풀이했다. 교육 내용도 진지한 토론보다는 ‘자주 묻는 질문(FAQ)’에 정답을 붙인 듯한 방식 일색이었다.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된 교육에선 실태 교육과 자유 토론이 이뤄졌지만 간부들과 병사들은 속내를 가감 없이 털어놓지 못했다.
○ “‘야, 너’가 아닌 이름을 불러야”
김 대위는 “병사가 없으면 군대도 없다. ‘야, 너’가 아니고 이름을 부르자”며 지난해 군 인권실태 조사 과정에서 나온 병사들의 의견을 소개하는 것으로 교육을 이어갔다.
오전 교육은 영상자료 등을 동원해 실제 군대 폭력 가혹행위 사례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오후엔 중대·소대별 자유토론 시간이 이어졌다. 30사단 기갑수색대대 1중대 소속 박행운 상병은 “인권이 지켜지지 않으면 나라 지키는 것도 안 된다”며 “후임병과 함께하는 선진 병영문화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외국에서 20년을 살다 입대한 성필준 일병(21)은 교육을 마친 뒤 “장병들이 장난삼아 성적인 얘기를 많이 하곤 하는데 그런 일들이 엄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번 교육으로 경각심을 갖게 됐다”고 소감을 말했다.
주한미군 카투사 병사들도 이날 한국군지원단장 주관으로 인권교육을 받았다.
.○ 특별교육만으로 군 인권 개선될까
해군 교육사령부는 4000여 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했다. 병사들은 폭력 구타 등 군대 내 가혹행위를 줄이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교육에 참석한 이문희 정훈과장(대위)은 “처음으로 전체 부대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전했다. 교육자원정보실 전산병인 김대현 상병(21)은 “병사들이 고충을 얘기할 수 있는 ‘생명의 전화’가 설치된 장소를 비밀이 보장될 수 있는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방부는 특별교육을 30사단 1개 부대만 공개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취재진이 너무 많이 몰리면 원활한 교육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보안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폐쇄주의에 빠진 군이 전시성 행사 대신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교육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병사의 인권이 실질적으로 개선되기 위해선 군 당국의 지속적인 관심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정치권은 군 사법체계 제도 개선 주문
한편 국방부 검찰단은 이날 윤 일병 사건의 가해 병사에게 ‘살인죄를 주 혐의로, 상해치사를 예비 혐의로’ 적용하라는 의견을 육군 3군사령부 검찰부에 제시했다. 이 사건을 최초로 수사한 28사단 검찰부는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를 적용했지만 최상급 군 검찰인 국방부 검찰단이 사실상 이를 뒤집은 것이다. 3군사령부 검찰부가 공소장을 변경할 가능성이 커졌다.
정치권은 군 사법체계 제도 개선책 마련에 나섰다. 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전문성이 없는 일반 장교가 재판장을 맡는 제도 등은 이번 기회에 손을 봐야 한다”며 “군 지휘관들이 사법체계를 운용하면 은폐, 축소하고 싶은 유혹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은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군 인사법과 국군조직법 개정안을 적극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