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9일 중국의 수입 규제 조치에 대해 이같이 언급했다. “우리가 먼저 지레짐작할 수 없다. 상황에 따라, 사안에 따라 봐야 한다”고도 밝혔다. 한마디로 ‘섣불리 대응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신중 모드’는 하루 만에 뒤집혔다. 기재부는 20일 범정부 비상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 회의가 끝난 직후 “고위·실무 협의체, 공식 서한, 세계무역기구(WTO) 위원회 등을 통해 중국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동원 가능한 모든 채널을 통해 중국발(發) 통상 분쟁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공개한 것이다. 회의 종료 후 보도자료에는 “한중 수교 25년을 맞아 경제 문화 등 교류도 활발히 전개하겠다”고도 밝혔다.
하루 사이에 말이 바뀌고, 당일 열린 회의에서조차 서로 다른 메시지가 나오면서 국민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무역 보복으로 의심되는 중국의 조치에 신중하게 대응하겠다던 정부가 당장이라도 분쟁 절차를 밟을 것처럼 발표하고, 다시 교류를 강화하자고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이니 헷갈리는 건 당연하다.
통상은 상대가 있는 어려운 싸움이다. 하물며 이번 상대는 한국산 수출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구입하는 중국이다. 17년 전인 2000년 중국발 ‘마늘 파동’은 준비되지 않은 통상 분쟁이 얼마나 큰 화를 불러오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한국이 3억 달러의 피해가 예상되는 중국산 마늘 수입에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50억 달러 규모의 휴대전화 수출 길을 막으며 힘을 과시했다.
지난해 기재부는 경기 인식, 구조조정 해법, 추가경정예산 편성 여부 등을 놓고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여 비판을 받았다. 국익을 놓고 외나무다리 위에서 아슬아슬한 승부를 벌여야 하는 통상 문제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식의 대응은 곤란하다. 한국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7.7%로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가장 큰 나라였다. 어설픈 논리로 우리 스스로의 대응력이 약해지면 언제라도 강대국들이 무역 흑자를 빌미로 시비를 걸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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