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헌재)의 탄핵 심판이 한창이던 지난해 3월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만든 계엄 관련 문건에 대한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인도를 방문 중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김의겸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을 통해 “독립수사단을 구성해 철저히 수사하라”는 지시를 내려 더 그랬다. 그에 앞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추미애 대표도 “촛불 시민을 대상으로 기무사가 위수령과 계엄을 모의한 행위는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위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철희 의원과 함께 이 문건을 공개한 군인권센터는 별도로 작성한 기자회견문에서 ‘촛불혁명 무력진압과 친위(親衛)쿠데타를 모의한 군 수뇌부를 엄단하라’고 주장했다. 이는 계엄을 친위쿠데타로 본 것이다. 추 대표가 ‘계엄 모의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본 것과 문 대통령의 철저한 수사 지시도 계엄을 친위쿠데타로 생각했기 때문이니, 둘과 기무사의 관계를 정밀히 살펴보기로 한다.
안보와 안전 분야 모토 가운데 ‘Think the unthinkable’이 있다.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을 생각해 대비하라’란 뜻이다. 사회는 다양한 안전망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사건과 사고를 당하는 것은 ‘보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인데, 이를 경계하려고 만든 것이 바로 이 모토다. 정보기관은 더 전문적으로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 그래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상상하라는 ‘Imagine the unimaginable’도 모토로 삼고 있다.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을 생각해 대비하라’
이 문건은 제목에 ‘전시(戰時)’라는 단어를 붙이고 있지만 내용을 보면 전시와 무관하다. 이 문건은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를 소재로 삼았는데, 이는 전형적인 ‘평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문건은 ‘촛불집회 측은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 태극기집회 측은 ‘탄핵이 인용되면 내란’이 일어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혁명과 내란은 민간이 일으키는 것이니, 군대가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쿠데타는 될 수 없다.
이 문건은 미사일 시험발사를 거듭해온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도발을 할 수도 있다고 봤다. 북한의 도발 위협이 점증하는 상황에서 탄핵 심판 결정이 나오면, 이에 불복한 시위가 대규모로 일어나고 경찰서 등을 습격해 경찰로서는 막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예측도 해놓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불복한 시위’다. 문건은 불복할 주체를 밝혀놓지 않았다. 그런데 탄핵안은 인용됐으니, 현실세계에서 불복한다면 주체는 태극기집회 세력이 돼야 한다.
결과가 그렇다면 이 문건은 ‘과격한’ 친박(친박근혜) 세력이 일으킨 내란이나 봉기를 진압하는 방안을 살펴본 것이 된다. 촛불집회 참가자는 물론이고 이 집회로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부를 보호하는 방안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친위쿠데타를 염려한 이유는 군대를 풀어 촛불집회를 막아버리고 탄핵 심판을 한 헌재를 무력화한 후 ‘과격한’ 친박 세력과 함께 다시 박근혜 정권을 세우는 계엄을 모의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문건에서는 그러한 모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굳이 문젯거리를 찾는다면 촛불집회 세력을 ‘진보’라고 한 후 괄호 치고 ‘종북’이라고 표현해놓은 것 정도일 뿐이다. 이 문건은 계엄과 위수령을 설명하고 있다. 그냥 설명하지 않고 ‘일부 보수진영이 계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계엄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으니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단 후 설명하고 있다.
위수령과 비상계엄
군인권센터의 친위쿠데타라는 표현 때문에 파문이 커지긴 했지만 이 사건을 일으킨 주인공은 이철희 의원이다. 이 의원은 오랫동안 위수령 문제를 따져왔다. 계엄은 전시나 사변 같은 국가 위기에 대처하는 것이라 국민, 국회가 만든 헌법과 법률(계엄법)을 근거로 집행된다. 그러나 위수령은 행정부가 만드는 대통령령을 근거로 한다. 발령 주체는 광역자치단체장으로 돼 있다.
본래 위수령은 과격한 시위가 벌어졌을 때 군부대를 보호하고자 만든 것이다. 그런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광역자치단체장이 요청하면 육군 부대가 출동해 경찰과 함께 시위를 막는 것으로 확대됐다. 육군 부대만 동원 가능하고 해·공군은 동원할 수 없다. 정권이 마음대로 강화할 수 있는 대통령령을 근거로 한 것이라 위수령은 권력을 지키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의원은 2016년부터 위수령 폐지를 주장해왔고, 박근혜 정부의 국방부도 동의해 올해 폐지하려고 했다.
그런데 촛불집회와 정권교체 등으로 아직 폐지되지 않고 있다. 촛불집회는 서울에서 가장 크게 일어났으니 이를 막기 위한 위수령은 민주당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이 요청해야 발령될 수 있다. 현실세계에서 박 시장이 촛불집회를 막는 요청을 할 리는 없으니 위수령 폐지 주장은 힘을 받지 못했다. 반대로 탄핵안이 인용되고 그에 반발한 태극기집회 세력이 과격한 시위를 벌였다면 박 시장은 위수령을 요청해 이를 막아낼 수 있다. 촛불집회를 전후한 시기 위수령은 민주당에 유리했으니 이 의원의 위수령 폐지 주장은 힘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계엄, 특히 대통령이 직권으로 내릴 수 있는 비상계엄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런데 국회는 촛불집회 초기 재빨리 탄핵소추안을 가결해 박 전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해버렸다.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은 계엄을 발령하지 못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는 국무총리는 할 수 있다. 당황한 일부 친박 세력은 당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계엄 선포를 요청했으나 황 대행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때 일부 군 지휘관이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명령을 임의로 내려 군을 출동시켜 시위를 진압하고 박 전 대통령을 다시 권좌에 앉혔다면 이는 친위쿠데타가 된다.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모의는 있을 수도 있다.
정보기관은 그 시점의 국가지도자에게 충성해야 한다. 촛불집회 시점의 국가지도자는 황 대행이었고, 황 대행은 계엄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니 정보기관은 Think the unthinkable 차원에서라도 친위쿠데타 모의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추 대표는 “기무사가 위수령과 계엄을 모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가 증거라고 본 것은 이 문건에 있는 출동 부대에 대한 설명뿐이다.
이 문건에는 ‘서울에서는 수도방위사령부가 계엄을 하는데 이러한 수방사를 지원하기 위해 육군의 20·30기계화보병사단과 1·9특전여단이 투입된다. 영남지역에는 수도기계화사단과 7특전여단이 지원된다’는 설명이 그래픽과 함께 들어가 있다. 이러한 설명이 계엄을 빙자한 친위쿠데타 모의가 될 수 있을까. 반대로 이미 있는 계획을 설명한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안보를 담당하는 군은 상시적으로 Think the unthinkable을 하고 있어야 한다. 전쟁 같은 위기는 예고 없이 닥칠 수 있으니, 군은 급작스러운 위기를 상상해 대책을 마련하고 연습해놓아야 한다. 상상한 위기에 대비하고자 군이 만들어놓은 계획을 작전계획이라고 한다. 계엄은 헌법과 법률이 요구하는 것이니, 군은 계엄에 대비한 출동 계획을 만들어놓았다.
어떤 부대가 어디로 출동하는 계획을 상세하게 짜놓은 것이 바로 충정계획이고, 이 계획대로 하는 것이 충정작전이다. 이 문건에 표시된 계엄 시 부대 이동 표시는 충정작전을 간략히 그려놓은 것이다. 이러한 그림 설명을 친위쿠데타 계획이라고 본다면 문건을 공유한 세력은 군사반란 주모자가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문건은 계엄을 설명한 단순 자료가 된다.
그런데 쿠데타 세력은 충정계획을 이용해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다. 따라서 그러한 것까지 전문적으로 살펴보는 기관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기무사다. 친위든, 친위가 아니든 군은 쿠데타를 ‘전복(顚覆)’이라 표현하고, 그러한 전복을 근본부터 막는 것을 ‘대(對)전복’이라 한다. 행동 단계에서 발견된 전복은 막기 어렵다.
충정계획과 충정작전
1961년 기무사의 전신인 방첩대는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에 육본 방첩대장인 이철희 준장 세력이 5월 15일 밤부터 박정희 소장을 미행했지만, 그가 동참을 표시한 김포 해병대로 들어가 부대를 끌고 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 때문에 대전복을 담당한 기무사는 작전지휘관에 대해서는 미행과 감시는 물론, 통신도청 등을 통해 쿠데타를 모의하는지 상시적으로 살핀다.
기무사는 대전복을 가장 중요한 임무로 보기에 기무처인 1처에게 이 일을 맡겼다. 그리고 작전계획을 포함한 군의 기밀과 방산업체의 비밀을 지키는 보안을 2처, 적과 주변국의 간첩활동을 막는 방첩을 3처에게 배당했다. 그리고 기무사 살림을 책임진 기획관리실을 둔 4개 체제를 유지해왔다. 이러한 이유로 기무사는 충정계획을 비롯한 군 사정에 정통하다. 그러나 작전부대는 없기에 직접 쿠데타를 감행하기는 어렵다.
기무사의 대전복과 보안·방첩 활동은 다른 군인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가 된다. 전복과 기밀 유출, 간첩 활동에도 민간인이 참여할 수 있으니 기무사는 민간인도 사찰해야 한다. 이러한 사찰이 심해지면 인권 침해와 탄압이 일어나는데, 대표적인 것이 1991년 ‘보안사 윤석양 이병 사건’이다. 당시 윤 이병이 내부 문건 폭로로 보안사령부(보안사)가 민간인을 사찰해온 사실이 드러나자 보안사는 기무사로 이름이 바뀌었고 민간인에 대한 사찰을 못 하게 됐다.
그러나 기무사는 끊임없이 민간인 사찰 의혹을 받았는데, 이는 전복과 기밀 유출, 간첩 활동에 민간인도 관여할 수 있는 현실 때문이었다. 이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기무사는 혹독하다 못해 조금은 뜬금없어 보이는 내부 정화를 거쳤다. 지난해 8월 문 대통령은 이석구 육군 소장을 중장으로 진급시켜 기무사령관에 임명했다. 그러한 이 사령관은 기무사를 대폭 개편했다. 부대 지휘관들이 제일 싫어하는 기무처 기능을 대거 축소한 것이다.
기무사의 약속
그때까지 기무사 조직은 기획관리실과 1처(대전복 담당)·2처(보안)·3처였는데 그는 3·5·7처로 바꿔버렸다. 대전복과 보안 업무는 합쳐서 3처가 하고 방첩은 5처, 그리고 기획관리실 업무는 7처가 맡게 한 것이다. 이는 대전복 기능을 현저히 약화시킨 것에 해당한다.
지독한 한파가 몰아치던 1월 25일 이 사령관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엄정한 정치적 중립 준수 및 고강도 개혁 다짐 선포식’이라는 행사를 열었다. 기무사 본부 요원들을 이끌고 현충탑에 분향한 그는 현충원으로 가져온 청계산 계곡수에 그를 포함한 모든 요원이 손을 씻는 ‘세심(洗心)의식’을 가졌다. 이 의식을 하기 전 그는 모든 요원에게 ‘우리는 과거의 과오를 반면교사로 삼아 낡은 관행과 적폐를 청산하고,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준수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법과 규정에 입각해 군 보안방첩 부대로서 역할에만 충실한 조직으로 변모하겠습니다’ 등 3개 항을 담은 서약서를 자필로 쓰게 했다.
찬물에 손을 씻은 요원들은 자신이 쓴 서약서에 손을 올린 다음 이 사령관의 선창에 따라 서약 내용을 낭독했다. 이 사령관은 “6월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기무사는 엄정한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훈시했다. 기무사의 영문 약칭은 DSC이다. 기무사는 이 퍼포먼스를 ‘DSC Promise(기무사의 약속)’라고 명명했다. 지방에 있는 기무사 예하 부대도 같은 행사를 가졌다. 그리고 기무사는 지난 정부 시절 기무사가 만든 문서를 국방부로 보냈다.
그리고 얼마 뒤 이철희 의원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기무사의 계엄 문서를 입수해 여론화를 시도했다. 그는 위수령을 없애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기에 그러한 목적으로 이 문건을 활용했는데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군인권센터가 친위쿠데타 모의라고 하자 문 대통령이 수사를 지시할 정도로 큰 관심이 쏟아졌다. 이러한 사실은 이 문건이 비밀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건에 기밀 표시가 있었다면 기무사는 그냥 국방부에 넘기지 않는다. 국방부에서도 새나갈 수가 없다. 유출한 이는 군사기밀 보호법으로 처벌받기 때문이다. 이 문서에는 결재란도 없다. 군을 포함한 정부의 일반 문서는 기획과 계획, 그리고 참고자료로 대별된다. 무슨 일을 하자는 제의를 할 때 만드는 것이 기획문서다. 그에 따라 일을 하게 되면 계획문서를 만드는데, 기획과 계획문서에는 모두 결재를 한다. 이러한 문서에는 비밀 등급을 부여할 수 있고 보안에 상당히 신경 쓴다.
그러나 지휘관이 업무 과정에서 궁금한 점이 있어 알아보라고 한 부분은 결재란 없이 문서를 만들어 올린다. 그야말로 참고자료이니 비밀 지정은 물론이고, 보안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기무사의 계엄 문건이 이와 비슷하다. 이미 국방부에서는 이 의원이 위수령과 계엄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해 전임 기무사령관 등이 직원들에게 알아보라고 지시해 이 문건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국회에서 촛불집회 때 계엄 문제와 관련한 질문을 받았을 때 참고해 답변하려고 작성했다는 것이다.
계엄이 선포되면 기무사는 경찰, 국가정보원(국정원)과 함께 합동수사본부를 만들어 기무사령관이 합수본부장을 한다. 기무사령관은 3성급 장성이지만 경찰청장은 대장급인 치안총감, 국정원장은 부총리급이다. 계급이 낮은 기무사령관이 경찰과 국정원을 통제하는 합수본부장을 하는 것은 부담이다. 평시 기무사는 국정원의 지시와 예산 지원을 받아 움직인다. 그러한 기무사가 계엄 시 국정원을 통제하려면 준비가 꽤 필요하다.
지휘권 정리 기회 삼자
이 문건은 계엄 시 만드는 합동수사본부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문건의 성격은 계엄을 설명하는 일반 자료에 가까워진다. 이렇게 판단하면 이 사건은 ‘태산명동에 서일필’이 된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갖고 소동을 일으킨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차제에 계엄 문제의 허점을 정비하자고 제의한다. 1991년 우리 군은 군령권과 군정권을 나눠 합참의장이 군령권을, 각 군 총장이 군정권을 행사하게 했다. 그러나 그 이상과 아래 조직에서 이 둘은 한 사람이 행사한다. 그 위에 있는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은 물론, 그 밑에 있는 여러 작전사령관(육군 1·3군 사령관, 해·공군 작전사령관 등)은 군정권과 군령권을 함께 갖고 있다.
군령권과 군정권을 나누기 전인 1991년까지 우리는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지명했다. 그러나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은 불법일 수 있다. 계엄은 작전이고, 작전은 군령권에 속하니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아야 한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계엄은 북한 도발이 심각할 때 발령될 수 있는데, 그때 모든 작전을 책임진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까지 하라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래서 예외적으로 계엄사령관은 육군총장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기무사 문건도 계엄사령관은 육군총장이 맡는 쪽으로 해놓았다.
기무사 계엄 문건 사건을 해프닝으로 끝내지 말고 지휘권 정리 등 허점을 정리하는 것이 Think the unthinkable을 하는 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악용 여지가 있는 위수령도 없애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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