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경색된 한중 관계가 본격적인 해빙기로 접어들고 있다. 비공식 채널 등으로 조심스레 관계 개선 의지를 보인 양국은 이제 탐색기를 거쳐 ‘고위급 채널’까지 동원해 공감대 형성에 나서는 분위기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30일 같은 날 해빙 메시지를 내놓은 게 상징적이다. 다만 사드에 대한 중국 측 입장이 여전히 오락가락해 관계 정상화까지 걸림돌이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 당국자 회동 잇따라
한중 당국 간 교류는 본 궤도에 접어드는 모습이다. 30일 외교부 관계자는 “최근 1, 2주를 기점으로 한중 채널에 불이 붙었다”고 했다. 비공식 채널을 중심으로 각자 입장만 전달하던 시기를 지나 양국 간 실무급 조율을 거친 뒤 이제는 고위급에서까지 수시로 의사를 교환하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얘기다.
실제 당국자 회동도 이어진다. 한중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는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는 31일 상견례를 겸해 처음 만난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최근 북한 내부 상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 방한 기간에 북한의 도발 가능성 등을 두고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만찬까지 함께한다.
한중 특허청장 회의(다음 달 17일), 한중일 보건장관 회의(다음 달 11, 12일)도 각각 항저우(杭州),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에서 열릴 예정이다.
사드 갈등으로 중단됐던 한중 경찰당국 간 교류도 재개된다. 허베이(河北)공안청 상무부청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은 다음 달 12∼14일 충남경찰청과의 교류를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베이징 소식통은 “경찰 당국 간 교류는 지난해 7월 전면 중단된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양국 간 접촉도 활발해지고 있다.
국회에선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을 단장으로 여야 4당 의원들로 구성된 ‘북핵 위기 해법 모색 의원단’이 다음 달 2∼4일 베이징(北京)을 방문한다. 이들은 중국 정부 고위 관료, 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 간부, 푸잉(傅瑩) 전국인민대표대회 외사위원장, 탕자쉬안(唐家璇) 전 외교담당 국무위원 등과 잇따라 면담한다. 이수성 전 국무총리와 국회의원, 학자 등이 포함된 한중지도자포럼 대표단은 3일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외교부장을 지낸 리자오싱(李肇星) 중국인민외교학회 명예회장 등과 비공개 포럼을 진행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선 원희룡 제주지사가 다음 달 8∼10일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에서 열리는 세계지방정부연합 집행부 회의를 위해 중국을 찾는다. 이와 관련해 한 외교 소식통은 “국내 인사의 방문에 대응하는 중국 측 인사의 급, 선정된 만찬 장소 등만 봐도 최근 확 달라진 현지 기류를 체감할 수 있다”고 했다.
○ ‘결연히 반대’ 표현 안 쓴 중국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세 가지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현지 기자의 질문에 “한국이 이를 실제 행동으로 이행해 중한 관계를 빠른 시일 안에 건강한 발전 궤도로 되돌리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강 장관이 오전 국회 국정감사에서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에 참여하지 않고, 한미일 안보 협력은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고, 사드 추가 배치도 없을 것이라고 하자 그 직후 기다렸다는 듯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중 간 정상회담 일정 등을 두고 협의 과정에서 중국 측 요구가 이 세 가지로 반영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우리 정부의 관계 개선 시그널에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화답한 건 24일 폐막한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기간 중이다. 중국이 반응을 보이자 우리 측에선 청와대를 중심으로 외교·안보 부처 실무자급까지 모여 사드 문제 등 한중 간 현안에 대해 중국 측과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향후 한중 간 어떤 접점을 모색하더라도 사드에 대한 중국 측 입장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정부 소식통은 “중국에선 같은 날에도 당국자마다 사드 관련 온도차가 다른 메시지를 줄 때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소식통은 “중국 정부는 한 달가량 자국 여론의 향방을 지켜본 뒤 정상회담 직전이라도 다른 요구를 해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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