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카드로 방위비 인상 견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31일 03시 00분


靑, 26곳 조기반환 추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바라본 용산 미군기지 모습. 2018년 5월 촬영된 사진이다. 현재 주한미군이 떠난 자리엔 한국으로 출장 온 미 행정부 인사 숙소로 쓰이는 드래곤힐호텔과 한미연합사령부 본부만이 남아 있다. 동아일보DB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바라본 용산 미군기지 모습. 2018년 5월 촬영된 사진이다. 현재 주한미군이 떠난 자리엔 한국으로 출장 온 미 행정부 인사 숙소로 쓰이는 드래곤힐호텔과 한미연합사령부 본부만이 남아 있다. 동아일보DB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결정 이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공개적으로 실망감을 표출하며 한미 관계의 파열음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가 주한미군 기지 조기반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미국이 반환을 약속하고도 환경오염 비용 부담을 거부하면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주한미군기지 문제를 공식적으로 거론하며 ‘기싸움’에 나선 것이다. 지소미아 파기 이후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한미동맹의 파열음이 커지면서 거센 역풍이 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17년간 묵은 미군기지 조기반환 꺼내 든 靑

청와대는 30일 오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었다. 지소미아 파기를 결정한 22일 회의에 이어 2주 연속 NSC 상임위를 연 것이다. 북한의 도발이나 남북관계 관련 중요 논의 사안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NSC 상임위가 통상 2주에 한 번씩 열려 온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이날 회의의 안건은 한일관계 동향 점검과 함께 주한미군 기지 조기반환 문제. 회의를 마친 뒤 청와대는 “NSC 상임위원들은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에 따라 평택기지 등으로 이전 완료 및 이전 예정인 총 26개 미군기지에 대한 조기 반환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17년간 줄다리기 중인 미군기지 조기 반환을 추진하겠다는 얘기다.

한미 양국은 2000년대 초 주한미군기지 이전·재배치와 관련된 두 가지 중요한 합의를 봤다. 2002년에 경기 동두천과 의정부 등 한강 이북에 흩어져 있는 미군기지를 경기 평택기지(캠프 험프리스)로 이전하는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을 체결했고, 2003년에는 서울 용산기지도 평택으로 이전하는 계획(YRP)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80개 미군기지 가운데 지금까지 54개 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한 뒤 한국에 반환이 완료된 상황이다. 나머지 26개 기지 중 19개는 반환 절차가 진행 중이고, 7개는 반환 절차를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


미군기지 반환을 두고 한미가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것은 환경오염 정화비용 문제 때문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 측은 반환하는 미군기지의 오염치유 비용을 부담한 사례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우리 정부는 적절한 환경정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맞서면서 26개 기지 대부분의 반환 계획이 한 발짝도 못 나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조기반환을 추진한다고 해서 한국이 환경오염 문제를 책임지겠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미국은 기지 반환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만큼 조기 협상을 촉구하는 의미”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국방부와 외교부, 환경부 등 관련 부처 차원의 협상 대신 국무조정실 주도의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서 미국과 올해 안에 ‘담판’을 보겠다는 구상이다. 군 관계자는 “용산기지의 평택 이전(2021년경) 이전에 오염치유 문제 등 반환 협상을 착수해서 조기에 반환받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는 메시지”

청와대는 주한미군기지 조기반환 추진과 관련해 “지소미아 종료 등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소미아 파기와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으로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주한미군기지 반환 문제를 공개 거론한 것을 두고 청와대가 미국을 상대로 ‘심리전’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은 완전한 돈낭비”라고 비판하는 등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이 거센 상황에서 정부가 그동안 한국이 미군을 위해 부담해온 간접적인 비용을 부각하려 했다는 것. 청와대가 미국이 요구한 지소미아 복원에 대해 “국익 앞에 어떤 것도 우선시될 수 없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김동엽 경남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미국이) 지소미아에 대해 일방적으로 일본을 두둔하며 한국을 향해 노골적으로 불만 표출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도 그냥 두고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할 말은 한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연내 미국 측과 용산기지 반환 절차에 착수하더라도 실제 반환에는 상당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측은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해 환경오염 치유비는 물론이고 주한미군 무기 감가상각비 등도 받아내겠다는 입장이어서 한미 간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지소미아 파기#문재인 정부#주한미군#방위비 분담금#미군기지#한미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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