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6시간 앞두고 극적으로 조건부 연장키로 결정했다. 일본이 수출규제 철회를 위한 대화에 나서기로 한데 따른 조치다. 한일이 막판 극적인 타협으로 지소미아 종료에 따른 한미동맹 균열 등 안보 파국은 일단 막은 것. 다만 정부는 일본의 신속한 수출규제 철회가 없으면 지소미아를 종료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언제든 지소미아를 둘러싼 한일 갈등 불씨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22일 브리핑에서 “지소미아 효력을 언제든 종료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8월 일본 정부에 통고한 종료 통지의 효력을 일단 정지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차장은 “한일간 수출 관리 정책 대화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일본 측의 3개 품목 수출규제에 대한 WTO 제소 절차를 정지시키기로 했다”고도 했다. 일본이 반도체 핵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한지 144일만이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을 결정했다. 전날까지 일본의 태도 변화 없이는 지소미아를 예정대로 종료할 것이라고 밝힌 청와대가 입장을 바꾼 것은 그동안 “수출규제와 지소미아는 별개”라던 일본 정부가 막판 수출규제에 대한 한국의 대화 제안을 받아들이는 방안을 제안해온데 따른 것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일본이 밝힌 수출관리정책 대화는 화이트리스트 복원이 의제”라며 “반도체 3개 품목에 대한 규제도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소미아 종료를 향해 마주 달리던 한일이 막판 타협을 이룬 데는 미국의 압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소식통은 “문 대통령이 미국 백악관, 국방부 인사들과의 접견에서 정부의 기본 입장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해달라고 당부했고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막판 중재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결정으로 강제징용 문제 등 한일관계 복원 움직임이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음달 중국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을 가질 가능성도 커졌다.
다만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원료 등 3개 품목을 개별적으로 심사해 수출 허가 여부를 판단한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를 조건부 연장했다고 무조건 수출규제를 철회하지는 않겠다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문제가 해결 안 되면 한일 관계가 정상화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우리는 언제라도 지소미아 종료 효력을 다시 활성화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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