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관계자는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조건부 연장과 관련해 급박했던 상황을 이같이 말했다.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는 당일 오전까지도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던 것. 지소미아 종료 시한인 23일 0시를 불과 6시간 남겨두고 청와대가 조건부 연장을 공식 발표하기까지 한미일 3국은 물밑에서 수차례 외교 채널을 가동했고, 결국 극적인 반전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 靑, 22일 오전까지도 종료 여부 결정 못해
청와대가 21일 오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 때까지만 해도 내부 분위기는 지소미아 종료 쪽에 가까웠다. 강기정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아베 신조 정부가 본인들의 잘못은 전혀 얘기하지 않고 완전히 백기를 들라는 식이다. 진전이 안 된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 탓에 8월 22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 직전 NSC에 ‘지소미아 유지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냈던 국방부는 이날 열린 NSC엔 별도의 의견을 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류가 바뀌기 시작한 건 다음 날인 22일부터였다. 이날 오전 문재인 대통령은 충남 천안에 있는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찾아 경제 극일 의지를 강조한 뒤 오후 NSC에 참석했다. 이날 회의는 당초 예정돼 있지 않았을뿐더러 문 대통령이 NSC 전체회의가 아닌 정 실장이 주재하는 상임위 회의에 참석한 것은 드문 일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회의는 1시간 넘게 진행됐고 매우 이례적으로 문 대통령이 임석했다. 이 자리에서부터 파국은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의가 오갔다”고 설명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 참석을 위한 일본 나고야행도 NSC 직후 결정됐다.
그렇다면 하루 만에 이런 반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21일 밤부터 미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며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강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심야 통화를 했고 일본에 머무르고 있던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이날 밤 일본과 막바지 논의를 진행하며 강력한 압박과 설득의 메시지를 내보냈다. 지소미아와 수출규제는 별개라는 입장을 고수하던 일본의 기류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은 이즈음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일 양국이 한발씩 양보했고, 막판에는 최종 합의안에 화이트리스트 복원 조건을 넣는 것과 관련해 줄다리기를 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한일관계 복원 의지도 강하게 작용했다. 문 대통령은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지소미아 종료라는 사태를 피할 수 있다면 일본과 함께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이달 4일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린 태국 방콕 회의장에서 아베 총리를 자신의 옆자리로 데려와 11분간 즉석 환담을 하면서 한일 갈등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정부는 주초 외교 라인 협상팀을 일본에 보내고 이달 초에는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극비리에 일본을 방문하는 등 물밑 협상을 지속해왔다.
○ 美, 한일 동시 압박하며 중재자 역할
지소미아가 종료 직전에 극적으로 조건부 연장하기로 결정된 것은 미국 정부의 중재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미국 정부는 8월 청와대가 지소미아 종료를 발표하자 “강한 우려와 실망을 표명한다”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21일에는 미 의회도 지소미아 종료 철회 압박에 가세했다. 미국은 한국을 압박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의 태도 변화도 강하게 촉구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18일 방콕에서 열린 한일,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 후 “미국이 한국과 일본 모두에 (지소미아 연장을 위한) 강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문 대통령이 4일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일본을 설득하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15일 방한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과 만난 자리에서도 이를 거듭 강조하면서 미국이 일본에 더 적극적으로 압박을 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등 문 대통령의 핵심 외교 참모들이 미국을 방문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며 지소미아 해법을 마지막으로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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