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이런 식의 행동이 반복된다면 한일 간 협상 진전에 큰 어려움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4일 한-아세안 정상회의 프레스센터가 마련된 부산 벡스코에서 기자들과 만나 22일 일본 수출규제 및 지소미아와 관련한 양국의 합의에 대한 일본의 반응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외교안보 컨트롤 타워인 정 실장이 직접 나서 예고 없이 브리핑에 나설 정도로 일본을 향한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
특히 청와대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발언을 다룬 일본 언론 보도와 관련해 “지도자로서 양심을 갖고 할 수 있는 말이냐”며 직격탄을 날렸다. 일시 봉합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감정의 골이 여전히 깊다는 점과, 후속 협상도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 정의용 “日, 계속 자극해봐라” 공개 경고
정 실장은 이날 일본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일본 정부의 반응과 경제산업성의 발표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제기했다. 정 실장은 “한국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절차 중단을 통보해 협의가 시작됐다”는 경산성의 발표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정 실장은 또 22일 합의내용 발표 직후 경산성이 “반도체 원료 등 3개 품목을 개별적으로 심사해 수출 허가 여부를 판단한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는 “한일 간에 사전 조율한 내용과 완전히 다르다”고 반박했다. 청와대는 이 경산성의 발표 내용에 대해 일본 정부에 강하게 항의했고, 일본 측이 “경산성에서 부풀린 내용으로 발표한 것에 사과한다”고 밝혀왔다고 전했다.
특히 청와대는 아베 총리의 발언도 문제 삼았다. 이날 일본 아사히신문은 아베 총리가 22일 양국 발표 직후 주위에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 미국이 상당히 (압박이) 강해 한국이 포기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지극히 실망스럽다. 그게 일본 정부의 지도자로서 과연 양심을 갖고 할 수 있는 말인지 되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아베 총리를 겨냥하고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청와대는 “명백히 사실이 아닌 것은 바로 잡을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 서로 지소미아 협상에서 승리했다는 韓日
정 실장은 브리핑 말미에 “영어로 ‘트라이 미(Try me)’라는 말이 있다”고 운을 뗐다. 정 실장은 “어느 한 쪽이 터무니없이 주장을 하면서 상대방을 계속 자극할 경우 ‘그래? 계속 그렇게 하면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모른다’는 경고성 발언”이라며 “‘유 트라이 미(You try me)’, 제가 그런 말을 일본에 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일본을 향해 ‘더 해 볼테면 해보라.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공개 경고장을 날린 것으로 조건부로 연장한 지소미아를 일본의 태도를 봐가면서 언제든 다시 종료할 수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일 정부 모두 표면적으로 미래 지향적 협력을 이야기 하면서도 자국 여론을 신경 쓰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정 실장은 ‘일본 외교의 승리’ ‘(일본의) 퍼펙트 게임’이라는 일부 일본 언론의 보도에 대해 “견강부회(牽强附會)”라고 반박하며 “큰 틀에서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원칙과 포옹의 외교가 판정승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도 “지소미아 연기 발표 전 여론조사를 보면 문 대통령 지지층의 상당수는 지소미아를 파기를 지지했다”며 “이런 지지층을 의식해 맞대응 할 필요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외교 소식통은 “외교는 승자와 패자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스포츠 경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한일 정부는 나란히 자국 여론만을 의식해 ‘우리가 이겼다’고 소리치고 있는 형국”이라며 “단기간의 유·불리에 매달리지 말고 한일 관계의 중요성과 진정한 국익에 대해 지금이라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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