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밖 펀치 맞은 與, 5시간 의총 끝에 “유승민 재신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6일 03시 00분


[朴대통령, 정치권 강력비난]
비공개 의원총회 무슨 일이

새누리당은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정치권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자 하루 종일 술렁거렸다. 유승민 원내대표를 정조준한 것은 물론이고 여야 정치권에 대해 ‘구태정치’ ‘배신의 정치’라고 직격탄을 날리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평소 의원총회를 길게 하지 않지만 이날 오후 1시 40분경 시작된 의총은 5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그만큼 ‘거부권 정국’의 파장이 컸기 때문이다. 한 중진은 “야당과의 갈등을 감수하더라도 여권 내부 분란을 막는 것이 더 급하다”고 말했다. 참석의원들을 통해 발언 내용을 재구성했다.

어두운 표정 유승민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힌 뒤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유승민 원내대표(오른쪽)가 어두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다. 왼편으로는 김무성 대표가 지나가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어두운 표정 유승민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힌 뒤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유승민 원내대표(오른쪽)가 어두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다. 왼편으로는 김무성 대표가 지나가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 초반은 국회법 개정안 자동폐기 논의

의총은 소속 의원 160명 중 140명 정도가 참석했고, 40명이 발언자로 나섰다. 당초 유 원내대표의 책임론을 놓고 격론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유 원내대표와 가까운 친박(친박근혜)계 맏형 서청원 최고위원은 의총에 불참했다.

주제는 재의결이나 자동폐기 등 거부권 대책 방안에 집중됐다. 하태경 의원은 “당당한 모습이 필요하다. (본회의 재의를 통해) 표결에 부치자”고 주장했다. 권은희 의원도 “당시 찬성한 것은 본인의 책임”이라며 “자동폐기로 가자”고 제안했다. 김상훈 의원도 “국회선진화법(개정된 국회법)이 있는 상황에서 (야당과) 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자동폐기를 제안했다.

결국 재의결 절차 없이 자동폐기로 가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어갔다. 김영우 의원도 “대통령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 자동폐기가 최우선”이라며 “(국회법 개정안 처리는) 우리 모두가 각자 최종적으로 정무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의총에선 국회법 개정안을 다시 본회의에서 표결하지 않고 19대 임기가 끝나면 자동폐기하자는 의견으로 정리됐다. 한 관계자는 “자동폐기 의견이 80% 정도로 대세였다”고 말했다.


○ 후반은 유승민 원내대표 책임론

의총 후반부 들어서 친박 의원들을 중심으로 유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가 제기됐다.

“유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가장 긴밀한 협조관계가 이뤄져야 하는데 갈등을 가장 유발하고 있다.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은 유 원내대표에게 신뢰가 안 가며, 협상 과정이 제대로 국정 운영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단결하려면 아픈 곳을 도려내야 한다.”(김태흠 의원)

“당청 갈등과 불통 문제는 유 원내대표가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탈당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 유 원내대표가 사퇴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이장우 의원)

“잘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정두언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부결됐을 때도 (이한구) 원내대표가 바로 사퇴를 했었다. 앞으로 어떻게 (유 원내대표를) 믿고 따르겠느냐.”(김진태 의원)

실제 당 일각에선 최악의 경우 박 대통령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탈당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우현 의원은 “누군가는 사과해야 한다”고 했고 김용남 의원은 “유 원내대표의 해명이 필요하다”고 가세했다.

홍문표 의원은 “봉합 갖고는 안 되며 수술을 해야 한다”며 “유 원내대표가 (거취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함진규 의원은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될 때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며 “언제까지 (야당에) 끌려다닐 것이냐”고 말했다.

하지만 다수 의원들은 사퇴 불가론에 힘을 실었다. 박민식 의원은 “(거부권이라는) 법률적 판단을 확대 해석해서 지나치게 정치적 책임론으로 연결하면 안 된다”며 “국회법 개정안은 강제 당론이 아니라 자율 투표로 한 것”이라고 했다. 이한성 의원도 “책임론을 제기하면 안 된다”고 발언했다.

○ 박 대통령 거부권 놓고 이견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놓고 비박(비박근혜) 친박의 논쟁이 벌어졌다.

비박계인 김성태 의원은 “헌법기관인 의원들이 결정한 것에 대해 거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의원들이 대통령의 거수기 역할로밖에 비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그러면서 “여야 간 합의한 국회법이 거부권으로 막히면서 새정치민주연합에 국정 운영을 마비시킬 수 있는 빌미를 줬다”며 “재의에 부쳐서 당이 할 도리를 다하자”고 제안했다. 황영철 의원은 “대통령의 표현이 아쉽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반면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이정현 의원은 박 대통령을 옹호했다. 이 의원은 “13년 동안 봤던 박 대통령은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로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사람”이라며 “청와대에서 끝까지 거부했음에도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이 의원이 발언 도중 “대통령을 능욕하지 말자”고 얘기하자 곳곳에서 ‘우리가 언제?’ ‘능욕이라니’ 등 격앙된 반응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결국 의총을 마무리하면서 유 원내대표는 “사퇴 요구는 더 잘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더욱 잘하겠다”고 말했다.

고성호 sungho@donga.com·홍정수 기자
#국회법#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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