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희균]‘뜨거운 감자’ 떠넘기는 靑-교육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9일 03시 00분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김희균·정책사회부
김희균·정책사회부
“사전에 교육부 장관이 예단을 갖도록 여러 얘기를 하면 절차적 문제가 있어 상세한 말씀을 못하는 것을 이해해 달라.”

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선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여부를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해 정회를 자초했다.

예단(豫斷)의 사전적 의미는 ‘미리 판단함, 또는 그 판단’이다. 황 장관의 말 가운데 “예단을 갖도록”이라는 대목에 대해 국어사전과 최근 당정청 기류를 결합해 해석해 보면 “국정화라고 미리 판단하도록”이라고 해석된다.

당정이 이미 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결론을 내리고 발표 시점만 남겨두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부는 이미 지난달부터 국정화에 대한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기만 재고 있었다. 국정감사가 끝난 직후로 발표 시점을 잡은 것도 이런 계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주무 부처 장관이 국정감사 자리에서 예단을 운운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그러나 황 장관만 탓하기에는 정책 결정 과정상의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다. 애당초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발동을 건 것은 교육부가 아니다. 청와대, 즉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가 절대적이다. 여기에 새누리당은 정치적인 득실을 따져 국정화의 바람을 잡아 왔다.

교육부는 말이 좋아 주무 부처일 뿐,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는 속칭 ‘바지 사장’이나 마찬가지인 형국이다. 국정화 여부도, 발표 시점도 모두 청와대의 ‘큐’ 사인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다. 그런데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청와대는 “당정이 결정할 일”이라고 눙치고 있다. ‘권한은 내(청와대)가 쥐고 책임은 네(교육부)가 지라’는 식이다.

포퓰리즘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정책 결정자가 정책 대상자들의 말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제 갈 길을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정책 대상자들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오로지 마이웨이만 고집하는 것이다.

역사와 국민 앞에 떳떳한 소신이라면 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들에게 국정화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설득하지 못하는가? 청와대도, 주무 부처 장관도, 어느 누구도 “내가 결정했노라”고 하지 못하는 정책을 어떻게 집행하려고 하는가? 청와대는 교육부 뒤에, 교육부는 청와대 뒤에 숨는 정책이라면 누가 총대를 메고 밀어붙일 수 있을 것인가? 국정화 강행 결정만큼이나 후폭풍이 두려운 이유다.

김희균·정책사회부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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