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노회한’ 방패는 견고했지만 허점도 있었다. 7일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에서 김 전 실장은 청문회 시작 12시간 가까이 일관되게 최 씨를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10시경 스스로 무너졌다.
김 전 실장은 ‘최순실을 언제 알았느냐’는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의 질문에 “이번에 (국정 기밀 문건이 담긴) 태블릿PC가 발견되고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이 (2014년 1월) 갖고 온 보고서(정윤회 동향 문건)에도 최순실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곧장 해당 문건을 내밀며 “문건 첫 문장에 최순실 대목이 있다”고 쏘아붙였다. 박 의원은 또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검증청문회 영상을 보여줬다. 여기엔 최 씨 관련 대목이 나오고, 그 자리엔 김 전 실장이 박근혜 캠프 법률자문위원장 자격으로 앉아 있었다.
김 전 실장은 “최근에 최 씨의 이름을 알았다는 건 착각”이라며 청문회 시작 12시간여 만에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최순실 이름을 모른다고 한 건 바로잡겠다”며 “하지만 (최 씨를) 접촉한 일은 없다”고 최 씨와의 친분을 거듭 부인했다. 야당 의원들은 일제히 “거짓말 마라. 혹세무민하지 마라”고 성토했다. 김 전 실장은 “(최 씨의 부친인) 최태민 씨가 문제가 많았다는 건 들었다”며 “박 대통령과 최태민 관계는 몰라도 그 딸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는 건 정말 몰랐고, (이번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김 전 실장의 ‘왜곡된 기억’도 이번 청문회에서 확인됐다. 최 씨의 추천으로 창조경제추진단장을 지낸 차은택 씨는 2014년 6, 7월경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정성근 당시 문체부 장관 후보자와 함께 김 전 실장의 공관에서 김 전 실장을 만났다고 했다. 이에 김 전 실장은 세 사람을 각각 따로 만났다고 주장했지만 청문회장에 증인으로 나온 김 전 차관은 차 씨가 김 전 실장을 만나고 있을 때 자신이 들어갔다고 반박했다.
차 씨는 당시 만남을 최 씨가 주선했다면서 “(당시 내가) 최 씨를 신뢰하지 못하자 (자신의 영향력을) 보여주려고 (김 전 실장과 만나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김 전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차 씨를 만났다고 주장했다. 차 씨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어르신(박 대통령)께 말씀을 들었다”고 했다고 한다. 차 씨는 최 씨가 김 전 실장을 두고 “‘고집이 세다’ 등 좋지 않게 얘기했다”고도 밝혔다.
김 전 실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머리 손질에 오랜 시간을 들였다는 언론 보도에 “청와대 관저에서 일어난 일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국가안보실장이 계속 보고를 드리고 있어 대면보고를 하지 않았다”며 “돌이켜보면 대면보고도 했어야 했다는 회한이 많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재임 당시) 박 대통령을 일주일에 두 번 뵐 때도 있고, 한 번도 못 뵙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김 전 실장은 문체부 1급 공무원 인사 개입 의혹,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관여 의혹,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등에 대해 모두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또 최 씨 등이 수시로 대통령 관저를 출입한 것엔 “외부 사람이 드나드는 건 경호실에서 관리한다. 비서실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김 전 실장에게 “‘오리발 실장’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겠다. 부인도 모른다고 할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김 전 실장은 심장 수술 전력을 언급하며 “어제(6일)도 통증이 와 입원할까 (생각)했지만 국회 권위를 위해 출석했다. 국회가 부르는 건 국민이 부르는 것이고 당연히 와서 진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몸을 낮추기도 했다. 또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해 오늘날 이런 사태가 난 데 대해 부끄럽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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