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북-중 관계 개선에 나서려던 중국은 충격에 빠졌다. 지난해 12월 12일 북한 모란봉악단이 예정됐던 베이징(北京) 공연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귀국한 데 이어 이번엔 북한이 중국에 아무런 사전 통보도 없이 핵실험까지 하면서 한 달 사이에 두 번씩이나 뒤통수를 맞은 모양새가 됐다.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 온 중국으로선 큰 외교적 실패가 아닐 수 없다. 북한 지도부를 향해 ‘핵무기 보유는 절대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내 온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역시 지도력에 큰 손상을 입었다. 이로써 올해 5월 36년 만의 북한 노동당 당대회를 계기로 이르면 상반기에 성사될 것으로 기대됐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와의 정상회담도 상당 기간 열리기 어렵게 됐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분노와 불만은 6일 외교부 대변인의 브리핑에서 그대로 묻어났다.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을 하기에 앞서 ‘외교부 성명’을 먼저 발표했다. 화 대변인은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지키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어떤 행동도 중지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형식의 성명은 2013년 3차 핵실험이나 2012년 일본의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국유화 등 중대 사태 때 나왔다. 화 대변인은 이어 중국 정부는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를 초치해 심각한 우려를 제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화 대변인은 북한으로부터 아무런 사전 통보가 없었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밝혔다.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 계획을 미리 통보받지 못한 것은 처음이다. 믿었던 북한에 일격을 당한 셈이다. 그는 ‘대북 제재를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중국은 당연히 국제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말해 유엔의 제재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중 외교부의 이 같은 대응에는 북한의 ‘수소탄’ 핵실험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중국 전문가는 “시진핑 주석이 매우 분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이날 공개한 ‘김정은이 수소폭탄 실험을 지시한 날짜’ 역시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김정은이 핵실험을 명령한 지난해 12월 15일은 모란봉악단이 전격 철수한 12월 12일로부터 불과 사흘 뒤다. 북-중 관계가 급랭한 가운데 핵실험 지시가 내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중 관계는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고위층 교류가 끊기는 등 오랫동안 냉각기를 거쳤다. 지난해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당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류윈산(劉雲山) 상무위원이 참석하면서 다시 관계 회복의 계기를 마련했으나 지난해 12월 모란봉악단 철수에 이어 새해 벽두부터 터져 나온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북-중 관계는 다시 급속히 얼어붙게 됐다.
런민(人民)대 청샤오허(成曉河)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마디로 미친 짓으로 위험한 불장난”이라며 “재난 수준의 파장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 교수는 “북한은 앞으로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것은 물론이고 정권 안정에도 큰 도전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분노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북한을 상대로 취할 제재 수단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효용성도 과거보다 점점 떨어지고 있다.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가 냉각되자 러시아와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등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3차 핵실험 후에 잠시 석유 공급을 중단했으나 곧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한과 접경하고 있는 중국 변경 지역에서는 고등학교 운동장에 균열이 생기고 건물이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진동이 느껴져 주민들이 대피하는 등 소동이 빚어졌다. 관영 중국중앙(CC)TV는 “옌지(延吉) 훈춘(琿春) 창바이(長白) 등지에서 뚜렷한 진동이 감지됐다”며 “(학교, 기업, 관공서 등) 각 단체가 사람들을 소개시켰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홍콩의 인권단체 중국인권민주화운동정보센터가 6일 중국군이 북한의 실험에 대응해 북한과의 국경지대에 3000명의 병력을 증원했다고 밝혔다고 둥팡(東方)일보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