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계기로 전례 없는 초강경 대북 제재를 요청하며 중국을 압박하고 나섰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장과의 통화에서 “(북핵 저지를 위해) 중국이 바라는 특별한 방식에 동의하고 존중하며 실행할 여유를 주려고 했지만 이제 그 방식은 실패했다”며 미국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드러냈다.
이제 국제사회의 시선은 중국의 선택에 집중되고 있다. 중국이 일부라도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선언적 의미에 그쳤던 과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훌쩍 뛰어넘는 실질적인 대북 제재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케리 국무장관은 중국에 요구한 구체적인 제재안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 관리들이 의도적으로 뉴욕타임스(NYT)에 흘린 것으로 추정되는 요구 사항에는 그동안 미국이 중국에 바라던 ‘위시 리스트(wish list)’가 총망라돼 있다.
가장 중요한 수단은 북한의 돈줄을 끊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방식의 대북 금융 제재다. 북한과 거래하는 국가와 금융기관, 개인 등이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미국은 이를 이란 제재에 적용해 핵 포기를 이끌어냈다. NYT는 “미국 재무부가 김정은이 거래하고 있는 해외 금융기관들을 파악해 놓은 상태”라고 전했다.
미국은 2005년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북한 계좌 동결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당시 미 재무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자금 등 2500만 달러(약 280억 원)가 예치돼 있던 BDA은행과 미국 은행들의 거래를 중지하겠다고 선언하자 북한이 강력 반발했다.
원유 공급 중단 및 감축은 가장 효과적인 제재 방법이다. 하지만 북한의 체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어 중국이 가장 반대한다. NYT는 익명의 미 행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중국에는 씨도 안 먹히는 이야기다. 원유 공급 중단 또는 감축을 안보리 결의안에 포함시키면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북한과의 교역을 줄이라는 요구도 포함됐다. 북-중 교역은 2010∼2014년 연평균 18.6%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북한의 전체 교역 중 중국의 비중도 57%에서 69%로 늘어났다.
하지만 북한이 가장 중요한 혈맹이자 포기할 수 없는 지정학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정부가 이 같은 강도 높은 대북 제재를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아울러 ‘중국 역할론’을 명분으로 북핵 저지의 책임을 오로지 중국으로만 넘기려는 데 대한 불쾌감도 감지되고 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8일 “북핵 문제의 유래와 해결의 가장 중요한 관건은 중국에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관영 환추(環球)시보도 이날 사설에서 “국제사회가 오직 중국의 대북 압박에만 기대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생각한다면 매우 유치한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유엔의 대북 제재 전망과 관련해 정부 당국자는 이날 “지금까지 핵실험에 대한 유엔의 대북 제재는 한 번도 표결까지 간 적이 없다. 만장일치로 이뤄져 왔다”고 말했다. 즉 중국과 러시아가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이 돼야만 안보리를 통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당국자는 “안보리가 그동안 북한을 상대로 취했던 금수조치, 화물검색, 금융제재, 개인·단체 여행금지 및 자산동결 등 네 가지 항목을 강화하는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일본이 추진하는 독자적인 대북 제재도 속도를 내고 있다. 공화당 소속 미 연방하원 폴 라이언 의장은 7일(현지 시간) 기자들과 만나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이 포함된) 대북 제재 강화 법안을 표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도 이날 유엔 안보리와 별도로 북한 국적자 입국 금지 등 독자적인 대북 제재 조치 마련에 착수했다.
한편 중국군이 9∼12일 서해와 인접한 보하이(渤海) 만에서 실탄 사격훈련을 한다고 중국해사국이 8일 발표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중국군이 북-중 접경지역에서 훈련을 벌이는 것은 처음이다. 중국군 기관지 제팡(解放)군보는 이날 “제39집단군 모 여단이 지난해 12월 24일 전천후 야간전투 동계훈련을 실시했다”고 전했다. 제39집단군은 한반도 급변사태 때 대응하는 선양(瀋陽)군구 소속 군단급 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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