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 1990년대 한국에서 철수한 미군의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의견과 미국의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다시 들여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 속도는 빨라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군사적 대응책이 부족하다는 데 따른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 불붙는 ‘독자 핵무장론’
독자 핵무장론은 한국의 재래식 무기로는 핵무기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도 핵을 개발해 ‘공포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에서 출발한다. 정치권에선 새누리당 정몽준 전 의원과 원유철 의원 등이 핵무장의 필요성을 일찌감치 제기해 왔다. 11일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사실상 항상 예외로 쳐 왔던 문제들을 과감하게 논의 테이블에 얹어야 한다”며 사실상 핵무장 공론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안보 전문가들도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을 놓고 활발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달 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해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북한, 안보, 핵 전문가 10여 명이 참여한 ‘우리 핵 연구회’가 출범했다.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전 통일연구원장)는 “회원들 중엔 당장 내일 핵무장화하자는 견해도 있고, 마지막 단계는 남겨두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는 등 세부적 주장은 다르지만 한국이 단계별 핵무장화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엔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핵무장을 결심한다면 한국은 1년 안에 핵무기를 만들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올 2월 “한국은 1조 원의 비용과 1년의 기간이면 충분히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며 “기술적 문제보다는 정치적 결단의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이 국제사회의 눈을 피해 은밀히 핵개발에 나서기는 힘든 만큼 국제사회의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 국제사회가 용인하지 않을 경우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야 하며 그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를 감내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무엇보다 미국이 핵무기 개발에 반대할 경우 한국 안보의 주축인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기게 된다는 게 독자적 핵무장론의 한계다.
일각에선 김정은 같은 비이성적 지도자와의 이성적 대응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핵무장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옛 소련과 중국 지도자들은 자국 국민에게 피해를 미치는 것을 막으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공포의 균형’이 가능했다. 하지만 김정은 같은 독재자는 주민들이 죽는 상황에도 꿈쩍하지 않는 비이성적 태도를 보일 것이기 때문에 핵이 핵을 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미군 전술핵 재배치 주장도
한국의 독자 핵무장은 국제 질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어 큰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미국의 전술핵을 들여오자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북한이 이미 핵을 보유했다고 밝힌 마당에 1992년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우리만 죽자 살자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공동선언이 무용지물이 됐으니 전술핵 배치는 무리 없이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술핵을 들여오면 경제적 피해도 최소화하고 개발비용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독자적 핵무장론을 전술핵 재배치를 위한 압박용으로 활용하자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에 미 본토와 같은 수준의 핵 억제력을 제공하는 강력한 ‘확장억제’를 공약한 이상 전술핵의 한국 배치에 동의할지도 의문이다. 유사시 괌 미군기지 등에서 전략폭격기가 출격할 수 있고, 북한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 핵미사일도 있기 때문에 굳이 한국에 핵을 들여놓을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전략폭격기 전개 등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이에 장광일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한반도의 미국 전략 무기 기지화’를 주장했다. 언제든 핵을 탑재하고 즉각 북한을 타격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나 원자력 잠수함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김정은 체제엔 엄청난 공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미군의 동의 여부가 불투명하고, 기지 건설과 유지비가 많이 들 뿐 아니라 국론 분열도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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