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 중 4번째 북한 핵실험 도발을 당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사진)이 국내외의 거센 공격으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졌다. 임기를 4개월여 남겨둔 오바마 대통령의 ‘글로벌 레임덕(국제적 권력누수)’이 촉발돼 건강 이상설에 휩싸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69)에게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치 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북한이 5차 핵실험을 실시한 9일 “민주당과 공화당이 한목소리로 ‘오바마 행정부는 김정은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46)은 당일 성명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며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가 올 초 부여한 대북 제재 권한을 전적으로 즉시 가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제이슨 밀러 트럼프 캠프 대변인은 “북한 핵실험은 클린턴이 전 국무장관으로서 참담하게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오바마의 인기에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클린턴마저 오바마 행정부의 북핵정책을 공격하고 나섰다. 클린턴은 북 핵실험 후 뉴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을 재고해야 한다. 지금의 제재 수준은 충분하지 못하니 평양을 붕괴시키도록 베이징을 속히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폴리티코는 “클린턴이 오바마의 대북정책으로부터 거리 두기에 나섰다”고 해석했다.
오바마의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는 북한 핵실험 전부터 커졌다. 4, 5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끝난 뒤 미 시사전문지 뉴스위크는 “G20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바마 대통령보다 한 수 위였다”라고 평했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시 주석은 G20 정상들이 공동 작성한 성명서와 별도로 직접 작성한 2쪽 분량의 성명서를 참가국들에 나눠주며 개최국 수장으로서의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냈다. 푸틴 대통령은 주요국 리더들과 양자 회담을 9건이나 성사시키며 외교력을 과시했다. 이에 비해 오바마 대통령은 양자 정상회담을 3건 성사시키는 데 그쳤다. 그가 레드카펫 없이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내리는 장면은 미국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보수적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정상회담과 관련해 “오바마 행정부의 이빨 없는 외교정책을 보여 줬다. (오바마 대통령의 재임) 8년간 당근도 채찍도 거의 마련하지 않아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방관자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이 힘을 잃으면 클린턴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힐러바마(힐러리+오바마)’라는 신조어가 나타내듯 오바마와 클린턴은 ‘이인삼각’처럼 이번 대선전에서 한 팀으로 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달 31일 52%였지만 북 핵실험 다음 날인 10일 50%로 2%포인트 하락했다. 아직 국민 절반이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지만 미국 언론들이 힘 빠진 대통령에게 비난 강도를 높이고 있어서 지지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하기 힘들다.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재임 마지막 해 9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지지율(30%)보다는 높지만 빌 클린턴 전 대통령(60%),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54%)에게는 못 미친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말 무리한 승부수를 던지지 않고 차기 대통령을 잘 돕고 있다는 상반된 평가도 있다. 캐나다 공영방송 CBC는 “오바마는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잃고 있지만 미래에 필요한 어젠다들을 제시하며 차기 정권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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