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7일 설 연휴 첫날의 평온을 깨고 장거리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북은 발사 당일 “새로 연구 개발한 지구 관측 위성 광명성 4호를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완전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도 어제 북한 장거리 미사일 ‘광명성호’의 1∼3단 추진체의 분리와 탑재체(광명성 4호)의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번 장거리 미사일은 500kg의 탄두를 싣고 최대 1만2000km를 날아갈 수 있는 사실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는 평가다.
위성 운반 로켓은 핵무기를 실어 나를 수 있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다. 북한이 2012년 12월 인공위성 광명성 3호에 이어 연속 위성 궤도 진입에 성공함에 따라 ICBM 개발 기술도 더 안정화하고 정교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이 핵탄두 소형화와 미사일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까지 확보하면 미국 워싱턴까지 핵탄두를 날려 보내는 것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정부는 즉각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겠다”며 ‘실효적이며 강력한 제재’를 다짐했다. 유엔도 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 소집해 북한을 강력히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북을 감싸고 있어 실효성 있는 제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제한돼 있다. 북한 미사일이 한국 영공을 침범한다 해도 우리 군이 요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군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패트리엇 미사일 시스템으로는 고고도를 나는 북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가 북의 미사일 발사 5시간 뒤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도입을 미국과 공식 협의하겠다고 밝힌 것은 자위권 차원에서 불가피한 결정이다. 북의 도발에 맞설 수 있는 수단이 사드 체계 도입 정도밖에 없다는 것이 통탄스러울 정도다. 사드 1개 포대로 한국의 2분의 1 정도의 지역 방어가 가능하다니 정부는 사드 신속 배치와 함께 추가 포대의 배치도 서둘러야 한다. 북한 경비정 1척이 그제 서해 소청도 부근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는 등 추가 도발 가능성이 큰 만큼 만반의 대비를 다해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중국이 김장수 주중 대사를 초치해 항의한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사드를 배치할 경우 중국이 한국에 경제 보복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안보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북의 4차 핵실험 후 근 한 달 만인 5일 박근혜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중국은 시종일관 대화와 협상이라는 정확한 방향을 관련 당사국이 견지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지적대로 중국이 자국 은행과 기업체들에 북한과 거래를 못 하게 하는 등 북한 경제의 전원 플러그를 뽑아버리지 않는 한 북한의 핵 개발을 막을 방법은 찾기 어렵다. 중국의 ‘북한 편들기’ 때문에 한국이 사드 배치 추진에 나섰다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지적을 시 주석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러시아도 북한에 로켓 기술을 제공했다는 한국 정부의 지적을 “완전한 헛소리”라고 부인하며 사드 배치와 강력한 대북 제재에 반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안보리 제재 외에 다자 제재, 단독 제재 등 ‘플러스알파’의 제재를 모색하는 것도 중국과 러시아의 태도를 알고 있어서일 것이다. 한반도에 다시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냉전시대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 바람직하진 않지만 북핵 문제에서 중국, 러시아의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 재차 확인됐다. 남중국해에 이어 한반도가 미중 갈등의 균열점으로 떠오르는 상황을 피할 수만은 없게 됐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3각 공조를 강화해 결연한 태세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사회 일각에서 핵무장론이 나오는 것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는 없다는 절박한 위기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핵을 갖자는 주장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비핵화 노력에 역행한다. 특히 무역으로 먹고사는 개방 체제의 한국은 핵개발에 따른 경제, 외교 제재를 감당할 수도 없다. 이란이 핵을 포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핵 잠수함, 핵 전폭기를 한반도 부근에 상시 배치하는 등 핵우산 제공을 보다 확고히 하는 방안을 한미가 논의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는 일이다. 박 대통령이 ‘통일 대박’ 목소리를 높였지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좌초했고, 중국을 움직여 북의 핵 포기를 유도하겠다던 구상도 착각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김정은 정권은 핵무기만이 자신들의 정권을 지켜준다고 믿는 한 계속해서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고, 김정은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핵과 미사일을 단념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박 대통령이 북에 대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발언한 것이 눈길을 끄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김정은 정권의 교체까지 염두에 두고 개성공단 폐쇄를 포함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대북 압박에 나설 수 있는지 알고 싶다.
정부는 미국 일본과 공조해 최악의 경우 전면전까지를 각오하고 김정은 정권 교체에 단호히 나설 것인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불안하고 비굴한 평화를 모색할 것인가. 박 대통령이 임기 내에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지 국민에게 진솔히 설명하고 국민과 하나가 돼 사즉생(死則生)의 자세로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한다. 더 이상 시행착오를 할 시간과 여유가 우리에겐 없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