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SLBM에도 무감각해진 한국 사회[오늘과 내일/이승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8일 03시 00분


미국도 안절부절못하는 북한 SLBM 도발
조국 수렁 빠진 한국, 안보 감수성도 마비

이승헌 정치부장
이승헌 정치부장
“가장 좋은 무기는 아예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무기라는 사람들이 있다. 난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적이 공포를 느끼도록 시험 발사든 뭐든) 단 한 번만 사용해도 되는 무기를 선호한다. 그게 미국의 방식이다.”

영화 ‘아이언맨’에서 굴지의 무기개발업자인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신무기를 시험 발사하면서 한 유명한 말이다. 영화 속 대사지만 군사 패권 국가로서 미국의 속성을 이처럼 날카롭게 지적한 말을 필자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실제로 미군은 핵무기를 시험 발사할 때 종종 외부에 공개한다. 위력을 감상하고 긴장하라는 것이다. 9월 미 캘리포니아 인근 해안에 있는 핵잠수함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트라이던트2-D5를 시험 발사한 뒤 공개했다. 2일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미니트맨3를 시험 발사했고 즉시 외부에 공개했다.

그런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북한이 최근 ICBM, SLBM 카드를 잇달아 만지작거리자 대남 단거리 미사일 도발 때와는 달리 화들짝 놀라고 있다. 북한은 2일 SLBM인 북극성-3형을 시험 발사했고 5일 비핵화 실무협상이 결렬되자 ICBM 시험 발사 가능성을 거론하고 나섰다. 그러자 미국은 온갖 북한 미사일을 탐지할 수 있는 첨단 정찰기인 조인트스타스 두 대를 일본 오키나와에 배치했다. 자기들이 누구보다 그 군사적 위력은 물론 국제 안보지형에 미칠 파장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지금은 ‘김정은과 아름다운 친서를 주고받고 있다’는 트럼프는 김정은의 ICBM에는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2017년 11월 ICBM인 화성-15형 시험 발사에 성공하자 “북한의 고립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김정은이 ICBM 시험 발사 버튼을 다시 누른다면 친서는 당분간 없던 일이 될 것이다. 미국이 중앙정보국(CIA) 등의 분석과 달리 북한이 ICBM 핵심인 탄두부 대기권 재진입(re-entry) 기술을 확보했다고 인정하지 않는 것도, 이를 인정하는 순간 북한이 미 본토를 타격할 핵무기 보유국이 되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와 합참은 북한이 SLBM을 쏘자 이례적으로 3일 공동 브리핑을 하고 “북한의 실험은 불필요한 도발(provocative)”이라고 규정했다. 비핵화 대화가 시작된 뒤 자제했던 ‘도발’이라는 표현을 다시 사용한 것이다. 그러면서 “바다 기반(sea-based) 발사대(수중 바지선)에서 쐈다”며 잠수함에서 발사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SLBM의 파괴력은 잠수함에 탑재된 채 조용히 목표 인근까지 와서 기습 발사하는 데 있다. 미국이 잠수함 발사 가능성을 언급하는 순간 북한은 ICBM에 이어 또 다른 핵전력을 소유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실 여부를 떠나 SLBM 요건을 100%는 갖추지 못했다고 강조한 것이다.

주변 상황이 이런데 한국은 이상하리만치 북한의 SLBM 도발에 조용하다. 과민반응하면 북한 의도에 말려들 수 있겠으나, 우리 명운이 달린 안보 이슈인데도 최소한의 사회적 논의와 우려 자체가 실종됐다. 북한은 공군 전력이 취약해 미국처럼 전략폭격기를 둘 수 없어 ICBM, SLBM이 핵 전력 ‘투 톱’이다. 그런데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SLBM은 9·19 남북 군사합의에 위배되지 않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예”라고 답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도 별 문제 삼지 않고, 일주일도 안 돼 SLBM 도발은 남의 나라 일처럼 되어가고 있다. 조국 블랙홀 때문이라지만 이 정도면 한 나라의 안보 감수성이 거의 제로 상태라고 봐야 한다. 언젠가는 조국 사태에서 빠져나와 안보 상황을 점검하는 날이 오겠지만, 그때는 이미 꽤 늦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북한 도발#김정은#slbm#안보 감수성 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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