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불안한 행보를 보이던 금융시장이 예기치 못한 북한발(發) 충격까지 받으며 심하게 비틀거리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북한 변수’는 단기 악재이자 미풍으로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중국의 경기 둔화와 국제유가 급락, 미국 금리 인상의 불확실성 등 해외의 다른 위험요인들과 결합하면서 순식간에 초특급 태풍으로 영향력이 커진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중국과 미국, 유럽 증시가 연일 동반 급락세를 이어가면서 글로벌 경제 전반에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 금융당국은 21일 일제히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 다른 악재와 결합해 이례적으로 큰 충격
한국의 금융시장은 그간 북한 리스크가 갑작스럽게 불거져도 학습효과와 내성 때문에 비교적 차분한 반응을 보여 왔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 때에는 다음 거래일에 코스피가 0.3% 하락했지만 이후 나흘간 1.8% 상승했고 원-달러 환율은 오히려 하락(원화 가치 상승)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때에는 발표 당일 주가가 3% 이상 급락했지만 금융시장이 빠르게 안정세를 되찾았다.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2014년 3월 서해안 해상사격 때도 충격이 크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금융시장이 유독 큰 충격을 받은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우선 북한의 도발 양상이 과거와 다르다는 점이다. 남한 내륙에 대한 포격이 처음인 데다, 북한이 제시한 데드라인이 22일인 점을 감안하면 사건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주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실장은 “앞으로 북한의 기념일인 9·9절, 쌍십절 등을 계기로 비슷한 일이 일어날 개연성이 있다”며 “북한이 얼마나 더 도발할지 모르는 탓에 시장의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분석부장은 “악재가 뒤섞이면서 충격이 더 커진 측면이 있다”면서도 “다만 이날(21일) 일본 등 아시아 증시의 하락 폭이 우리보다 더 컸던 점을 감안하면 북한 변수와 국내 금융시장 충격의 인과관계가 분명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정부 “외국인투자가 대상 설명회 열 계획”
정부당국은 북한 변수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을 거론하며 시장을 달래고 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기존 일정을 취소하고 긴급 대책을 강구하는 등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이고 있다.
정부는 21일 주형환 기획재정부 차관 주재로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어 “오늘부터 관계기관 중심으로 합동점검대책반을 구성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금융당국과 한은도 각각 이날 오전 긴급 점검회의를 열어 시장 상황에 대응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시장 안정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의 변동성지수(VKOSPI)는 21일 전날보다 24% 급등하며 올 들어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다. 한국의 국가부도확률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2년 3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당초 이날 오후 경주 엑스포공원에서 열리는 ‘실크로드 경주 2015’ 개막식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북한 사태가 간단치 않다고 판단해 일정을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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