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로 두 아들의 이름을 힘껏 외치는 양철영 씨(97)의 목소리가 떨렸다. 25일 ‘이산가족 상봉 재개 계획’이 담긴 남북 고위급 접촉 결과가 발표된 이후 양 씨는 “6·25전쟁 때 북에 두고 온 두 아들과 아내를 만날 수 있다는 단꿈을 다시 꾸게 됐다”고 심경을 전했다. “부탁드립니다. 꼭 만났으면 좋겠습니다”라며 마지막 바람을 전할 땐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현재 우리 정부에 등록된 이산가족은 12만9000여 명. 생존자는 6만6000여 명으로 절반가량이 양 씨와 같은 80세 이상의 고령자다. 그간 남북관계가 악화일로에 놓이자 이들은 ‘속앓이’를 하며 초조하게 기다려 왔다. 이산가족 허갑섬 씨(81·여)는 “19번이나 상봉행사 참가 신청서를 냈지만 다 떨어졌다. 상봉행사 소식이 없어 막막했는데 오늘 방송을 보고 가슴이 떨려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며 “북한에 있는 오빠, 언니를 만나면 어떤 선물을 보낼까 고민하며 기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 춘천시에 사는 심영순 씨(70·여)는 다섯 살 때 생이별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 밤잠을 설쳤다. 6·25전쟁 당시 아버지가 북한군 부역에 끌려가면서 헤어진 뒤 여러 경로를 통해서 북한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제는 생사를 알지 못한다. 심 씨는 “이산가족 상봉 때마다 아버지를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허사였다”며 “아버지를 만난다면 상봉의 한을 가슴에 안고 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꼭 해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상봉 행사가 확정되진 않았지만 일회성에 그칠까 걱정하는 이산가족들도 있다. 형제자매 4명이 북한에 있다는 김성훈 씨(87)는 “상봉 이후 연락이 끊겨 전보다 더 애태우는 이산가족이 많다고 들었다”며 “고령이 된 이산가족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 상봉 이후에도 서로 소식을 확인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해 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상봉 계획이 단순히 인도주의적 측면뿐 아니라 그간 경색됐던 남북관계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발표 때 정례화 이야기도 나왔는데 성공한다면 남북관계 회복을 위한 제도화 단계로 돌입하게 되는 것”이라며 “비정치적인 분야의 교류가 확대되면 그 파급효과는 정치 경제 사회 곳곳으로 퍼져 남북 간 신뢰 구축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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