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김정남 피살 소식이 전해지면서 북한 김정은 체제가 안정적으로 보였던 겉보기와 달리 내부에서 복잡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지금은 외국까지 가서 김정남을 제거할 만큼 김정은의 권력이 위협받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① 김정은 지시?
김정일의 아들인 김정남에 대한 살해 명령은 김정은만이 내릴 수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 소행이 맞다면)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의 직접 승인이나 동의 없이는 이뤄지기 어렵다”며 “이번 피살에는 해외 업무를 맡고 있는 정찰총국이 관여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남은 김정은이 집권한 직후인 2012년 일본 도쿄(東京)신문과 e메일 인터뷰에서 (후계자 수업이 2년밖에 안 된) 젊은 세습 후계자가 어떻게 이어 나갈 것인지는 의문”이라며 김정은이 권력을 이어받은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최고 존엄’으로 받들어져야 할 김정은에게 불경스럽고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직접적인 도발이었다.
김정남은 2013년 12월 김정은이 고모부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처형한 지 3년이 넘은 시점에 피살됐다. 그 배경에 김정남의 한국 망명 및 망명정부 건립 시도설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김정일 사후 북한에 귀국조차 못하던 김정남 살해를 결심했다면 그만한 계기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잇따른 공포정치 여파로 ‘더 이상 김정은으로는 안 되겠다’는 인식을 가진 세력이 김정남과 접촉해 반역을 꾀했다가 적발됐을 수도 있다. 재일동포 일가로 무용수 출신인 자신의 모친(고영희)과 달리 김정남의 모친 성혜림이 출신성분이 더 낫다는 점은 ‘백두혈통’을 내세워야 하는 김정은이 늘 열등감을 갖게 한 요인이기도 했다.
② 국가보위성 충성 작전?
김정은이 지난달 간첩 적발, 반역 시도 제거가 주업무인 국가보위성을 상대로 검열에 나선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김원홍 국가보위상은 지난달 대장에서 소장으로 3계단 강등된 뒤 직위에서 해임됐다. 정보기관 총책임자이자 김정은의 핵심 보좌역인 보위상을 숙청한 것은 ‘제 역할’을 못한 문책이자 최측근도 언제든 제거된다는 공포정치의 재개로 해석됐다.
궁지에 몰린 보위성이 김정남 제거에 적극 나섰을 가능성도 있다. 김정남 제거를 ‘공적’으로 내세움으로써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지난해부터 말레이시아에 김정남의 위치를 추적하기 위해 북한 보위성 요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보위성 요원들은 특히 김정남의 망명 가능성을 우려해 쿠알라룸푸르 주재 한국대사관을 집중 감시했다고 한다.
이번 피살은 북한 당국이 2013년 4월 평양 주재 외국공관에 철수하라고 요구한 행동과 유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그해 2월 핵실험을 한 데 이어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4월 ‘신변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외교관 철수를 요구해 한반도 긴장 수위를 극도로 끌어올렸다. 12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에 이어 김정남 암살을 자행함으로써 갓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를 상대로 한반도 상황을 자신의 의도대로 끌어가겠다는 셈법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정남 피살사건은 앞으로 정치·외교적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김정남의 신변 보호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진 중국과의 미묘한 갈등이 불가피하다. 중국은 김정은 유고 시 북한 체제 안정을 위한 ‘대타요원’으로 김정남을 염두에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 마카오에서 학교를 다닌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③ 왜 수교국가 공항에서?
또 지난해 북한은 수차례 외교 고위급 인사를 말레이시아, 라오스 등에 파견하겠다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번 피살은 이런 모욕에 대한 보복이자 잇달아 대북제재에 동참한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항의표시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수교국인 말레이시아에서 암살을 자행함으로써 동남아 국가들과 북한의 관계는 더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백주대낮에 일어난 민간인 독살이 북한 당국의 사주에 의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이미 유엔과 미국에서 진행 중인 ‘인권 관련 대북제재’도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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