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한 흔적도 없이…‘비운의 모자’ 김정남 생모 성혜림 묘지석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7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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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피살된 김정남과 그의 생모 성혜림은 모두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채 객지에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성혜림은 계속되는 신변 위협을 견디다 못해 1971년 김정남을 낳고 3년 뒤인 1974년 러시아로 떠났다. 신병치료라는 명목이었지만 사실상 망명이었다. 그리고 죽어서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성혜림의 묘소는 모스크바 서쪽 외곽의 트로예쿠롭스코예 공동묘지에 있다. 모스크바 근교 여러 공동묘지 가운데 주러 북한대사관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도심 한복판인 ‘붉은 광장’에서 출발해도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러시아 관계자는 “모스크바 인근 10개 공동묘지 가운데 관리하기 쉽도록 대사관과 가까운 곳을 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정은이 자신의 배다른 형제의 생모 묘지를 누구에게 돌보게 할 만큼 너그러운 인물은 아니었다. 기자가 2015년 7월 찾아간 묘소는 잡초가 무성한 상태로 방치돼 누가 얘기해주지 않으면 위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황폐했다. 공동묘지 입구부터 1km 남짓한 거리에 있지만 정확한 위치를 찾기까지 2시간 이상 걸렸다. 기자와 동행한 러시아 관계자가 ‘무덤이 불쌍해 보인다’며 자신의 돈으로 꽃을 사서 갖다놨을 정도였다.

묘지 안내인은 “북한 사람의 묘소가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고 최근에 찾아온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공동묘지는 매월 소정의 비용만 지불하면 묘소의 풀도 뽑고 주변 구역 정리를 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은의 공포정치 탓에 북한 사람들이 선뜻 돈을 내거나 찾아와 묘지를 돌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묘지석도 주인공의 인생만큼이나 황량했다. 한글로 ‘성혜림의 묘. 1937. 1. 24~2002. 5.18’이라고만 적혀 있을 뿐. 어디서 태어나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단서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묘지석 뒷면은 더 처량했다. 오직 다섯 글자 ‘묘주 김정남’이 전부였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은 1995년 태어났지만 묘지석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다. 묘지석을 주문한 사람이 김한솔의 존재를 몰랐거나 굳이 드러내 위협에 노출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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