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은 구슬픈 목소리로 같은 노래를 10번이나 불렀다. 그가 부른 노래는 나훈아의 ‘고향으로 가는 배’. 노래를 끝낸 김정남은 이내 눈물을 쏟아냈다. 2010년 여름 마카오 현지에서 처음 김정남을 만나 지금까지 친분을 쌓아 온 한국 여성 A 씨가 털어놓은 내용이다. A 씨의 기억 속 김정남은 고향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비운의 황태자’ 그 자체였다. 동시에 ‘곰돌이 푸우’처럼 소탈하고 좋아하는 음식으로 스스럼없이 ‘닭발’을 꼽던 유쾌한 사람이었다.
16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A 씨는 “마카오를 오가며 사업을 하던 재일교포 지인을 통해 우연히 김정남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김정남과 세 차례 만나 공통의 관심사인 음악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A 씨는 한국에서도 페이스북을 통해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A 씨에 따르면 김정남은 한국의 음식과 노래 드라마 영화를 좋아했다. 마카오 한국식당에서는 주로 삼겹살을 먹고 소주를 마셨다. 김정남은 한국 내 지인에게 택배도 보내는 등 한국 친구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김정남이 가장 가고 싶은 곳도 한국이었다. 김정남은 A 씨도 모르는 닭발 맛집 등 한국 정보를 잘 알고 있었다. A 씨는 “한국을 못 가는 것에 한(恨)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며 “한국과 가까운 일본조차 못 가게 된 걸 많이 아쉬워했다”고 말했다. 김정남은 2001년 5월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갔다가 적발돼 추방됐다.
A 씨는 김정남이 북한 ‘로열패밀리’ 출신인 걸 과시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A 씨조차 첫 만남 때 동명이인인 줄 알고 “TV에서 보니 김정남은 헛짓거리 하는 사람”이라고 우스갯소리를 건넸다. 하지만 김정남은 화내지 않고 웃기만 했다고 한다. 김정남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부인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A 씨에게 “가끔 바가지를 긁긴 해도 아내가 재테크를 잘한다”며 “사이가 아주 좋다”고 말했다.
김정남은 북한과 이복동생 김정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사회주의 국가를 인정할 수 없으며, 김정은이 너무 불쌍하다는 게 요지였다. 술을 마시면 “아버지(김정일)가 나를 싫어한다”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A 씨는 “늘 신변 위협에 시달렸다. 북한 상황도 ‘옥경’이라는 이름의 경호원이나 일본 기자를 통해서만 듣는 것 같았다”며 “이러니까 김정남이 한국을 좋아한 것 아니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북한이 외화벌이를 위해 마약거래를 하는 것도 “방법이 잘못됐다”며 비판적이었다. A 씨는 “김정남은 전반적으로 북한 체제를 부정적으로 봤다. ‘(내가) 북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한 번은 A 씨가 “북한에도 정년(停年)이 있느냐”고 물었다. 김정남이 “그런 건 없다. 그런데 (공을 올려서 받은) 배지가 너무 많아져 (가슴에) 달 데가 없는 사람들은 등짝에도 단다”고 말해 지인들과 크게 웃었던 일화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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