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된 김정남의 곁에는 여성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은 김정남의 머리를 뒤에서 붙잡았다. 다른 한 명은 그의 얼굴에 극약 성분이 든 스프레이를 뿌렸다.
처음 두 여성을 북한 공작원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일단 지금까지 수사 내용을 보면 두 여성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여권을 소지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고 섣불리 단정 짓기도 어렵다. 북한 출신이 아니라면 적어도 북한 공작원에 의해 포섭된 전문 암살단일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세계를 뒤흔든 테러와 암살 등 어두운 작전의 현장에는 늘 여성이 빠지지 않았다.
○ 미인계는 가장 치명적 ‘무기’
여성을 이용한 러시아의 ‘미인계’는 유명하다. 2010년 6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러시아 대외첩보부(SVR) 소속 공작원 10명을 간첩 혐의로 체포했다. 이 중 ‘안나 차프만’(당시 28세)이란 여성이 있었다. 그는 모델을 연상케 하는 외모를 앞세워 뉴욕을 무대로 활동했다. 정계와 학계 금융계 유력 인사들이 즐겨 찾는 클럽인 ‘줄리엣’과 ‘그린하우스’를 드나들며 각종 정보를 수집했다. 차프만은 FBI에 체포된 지 한 달여 만에 러시아로 추방됐다.
서방에서 여성 공작원을 적극 활용하는 곳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 ‘모사드’ 내 암살과 납치 전담 부서인 ‘키돈’은 ‘중요한 업무’에 여성 공작원을 투입한다. 모사드의 여성 공작원이 명성(?)을 떨친 대표적인 작전은 2010년 1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고위 간부인 마흐무드 알마브후흐 암살이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알부스탄 호텔을 무대로 펼쳐진 이 작전에서 ‘게일 폴리어드’(당시 26세)란 여성 공작원이 핵심 역할을 했다. 아일랜드 위조여권을 소지했던 폴리어드는 알마브후흐가 묵었던 객실을 파악하고 암살조 안내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폴리어드는 금발머리(사건 당일에는 검은색 가발을 썼음)에 전형적인 미인형 얼굴을 가졌다.
○ 암살 기술보다 적응 능력이 중요
북한 여성 공작원의 실체가 국내에 드러난 건 1987년 11월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의 범인 김현희다. 김현희는 1991년 회고록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를 통해 북한에서 거친 공작원 교육 과정을 소개했다. 그는 “실탄사격은 권총과 자동보총을 주로 다루었는데 권총은 실탄 40발씩 월 2회 사격하고 자동보총은 3개월에 한 번씩 15발을 사격했다. 사격은 90% 이상을 명중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적었다.
북한 전문가와 탈북단체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북한 공작원은 보통 출신성분이나 체격조건을 따져서 17세 전후 고급중학교 졸업 후 선발한다. 교육 기간은 최소 2, 3년. 여성도 예외 없이 특수전사령부처럼 사격과 독침술, 항공기 조종, 살인 무술인 격술 등 고도의 훈련을 받는다. 몇 년 전부터 북한은 여성 공작원의 현장작전 투입을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사이버전은 100% 남자인 반면 암살 납치 테러에는 주로 여성을 활용한다”며 “이번에도 김정남에게 덩치 큰 사람들이 접근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직접적인 공격 기술 외에 사회 적응 능력도 중요해졌다. 자본주의 사회에 자리 잡기 위해 마사지 등 각종 직업 기술까지 배운다고 한다. 자력으로 돈을 벌면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김정아 통일맘연합 대표는 “가족들은 자신의 딸이 공작원으로 뽑혀 외국에 가면 영원히 못 본다는 걸 잘 안다”며 “거부하면 반역이기 때문에 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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