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한 달 뒤 북한은 “KAL기 폭탄테러설과 관련해 이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없다. 이는 한국의 북한에 대한 비방운동이다”라는 공식반응을 내놨다. 용의자로 지목된 일본 여권 소지자 ‘하치야 마유미’와 ‘하치야 신이치’는 종적을 감춘 상태였다.
1987년 12월 1일 한국과 일본 측 연락을 받은 바레인 당국이 공항에서 이들을 발견했다. 신이치(훗날 김승일로 밝혀짐)는 담배 속에 숨긴 캡슐형 독약을 먹고 즉사했다. 마유미도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해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살아났다.
같은 달 15일 마유미의 신병이 한국으로 인도됐다. 그리고 본격적인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 수사관과 마유미 사이에 치밀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나는 중국인이다. 한국말을 모른다.” 마유미는 시치미를 뗐다. “밥 대신 햄버거를 달라”는 말도 중국어로 했다. 한시(漢詩)를 써 보이며 본인을 소개하기도 했다. 사는 곳은 일본이라며 유창한 일본말도 구사했다.
검찰은 미묘한 거짓의 단서를 찾아냈다. 마유미는 중국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재가하는 바람에 고아로 어렵게 자랐다고 했다. 그리고 어릴 때 주로 먹은 음식이 호떡이라고 대답했다. 당시 호떡은 중국 부유층이 먹는 음식이었다. 또 식사 때 구운 김을 주니 “종이를 태워놓은 것이냐”고 말했다. 김을 모르는 중국인 행세를 한 것이다. 일본에서 오래 살았다는 자신의 진술과 상반된 것이었다.
거짓말을 확신한 검찰은 여성 수사관을 투입했다. 여성만의 신뢰관계를 형성해 마유미의 닫힌 빗장을 여는 전략이었다. 수사관들은 마유미와 함께 목욕하고 머리를 빗겨줬다. 식사 때 맛있는 음식을 손수 권했다. “언니 미안해.” 수사 개시 8일 만인 12월 23일. 마침내 마유미는 김현희가 됐다. 계속된 수사에서 김현희는 북한에서 7년가량 특수공작 교육을 받고 김정일의 지시로 외국인으로 위장해 민간항공기에 테러를 감행했다고 실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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