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북한 망명정부) 수반이 된다 해도 결국 3대 세습 아닙니까. 김씨 일가의 세습은 이제 끊어야 합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은 지난해 6월 국내외 탈북 모임 대표들이 제안한 북한 망명정부 수반직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김주일 국제탈북민연대 사무총장은 19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1년 6개월 동안 김정남을 수반으로 영입하기 위해 접촉한 긴박한 과정을 공개했다.
김 총장 측과 김정남의 첫 만남은 2014년 12월. 김 총장은 “언론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마카오에 머물던 김정남은 2014년 12월 김정일 사망 3주기를 맞아 평양에 다녀왔다”며 “여정 중 중국에서 우리 측과 처음 만났고 그때부터 우리는 지속해서 수반직을 제안했다”고 했다.
그동안 국내외 탈북자들은 제3국에 망명정부를 세워 김정은 정권의 정통성을 박탈하자는 논의를 계속해 왔다. 김 총장은 “북한 주민들은 김정남에 대해 잘 모르지만 기득권층은 그의 존재를 알고 있다. 김정남이 망명정부 수반이 되면 기득권층을 흔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접촉 배경을 밝혔다.
마지막 접촉인 지난해 6월에는 김정남과 친한 한 싱가포르의 대학교수를 통해 싱가포르에 머물던 김정남에게 재차 제안했다. “당신이 정권 잡아야 김정은 목숨 살려”… 김정남은 침묵
당시 탈북민연대 측은 “가난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을 누군가는 구제해야 한다”며 “영향력이 있는 이가 수장이 돼야 국제사회가 망명정부를 인정할 것”이라는 간곡한 뜻을 전달했다. 이어 할아버지(김일성)와 아버지(김정일)가 저지른 과오를 수습하는 차원에서라도 수반을 맡아 달라고도 했다.
마지막 설득 카드는 예민한 김정은의 신변 문제였다. 당시 탈북민연대 측은 “당시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정권 교체에 성공할 경우 김정은 처형 문제가 거론될 텐데 당신이 정권 교체에 기여하면 김정은의 목숨은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도 당신을 통해서 보험에 들 수 있다”고 설득했다고 김 총장은 전했다.
그러나 김정남이 제안을 거절한 가장 큰 이유는 ‘정치가 싫다’는 것이었지만 3대 세습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강했다고 김 총장은 전했다. 다만 김정남은 북한의 개혁 개방을 찬성하며, 탈북자들의 이런 활동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김 총장은 “김정은에게는 본인을 대체할 수 있는 인물이 있다는 것이 위협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 언론들은 김정은이 김정남의 망명정부 가담을 의심해 살해를 결심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김 총장은 망명정부 수반으로서 다음 접촉 대상은 김평일 주체코 북한 대사라고 콕 집었다. 김평일은 북한 주민 모두가 알고 있어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국내외 탈북단체 대표들이 4월경 회의를 열어 망명정부 설립 논의를 본격 시작할 것”이라며 “총을 들고 항거한 독립군을 통할한 상하이임시정부의 21세기형 망명정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외교전을 펼쳐 김정은 정권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게 주요 목표다. 20∼30명의 탈북 외교관 중 상당수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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