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당국자들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겨냥한 움직임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9일 “남북관계에 여러 갈래의 흐름이 있지만 아직은 불안하고 불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현 장관은 이날 서울 중구 태평로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진보와 보수, 통일을 말하다’라는 주제의 세미나 축사에서 “그 흐름들을 대화와 협력, 평화와 통일 방향으로 모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강경한 대북 원칙을 강조해온 현 장관이 ‘여러 갈래의 흐름’을 강조한 것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그는 이날 오전에는 비공개로 진행된 한국국방연구원(KIDA) 주최 국방포럼 기조강연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원칙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상회담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통일부 당국자는 “올해 초 대화 공세를 하던 북한이 군사실무회담에 나왔다가 갑자기 뛰쳐나가는 모습 등 ‘북한의 오락가락하는 흐름’에 대해 말한 것일 뿐”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현 장관의 발언은 이명박 대통령이 2월 1일 신년 방송좌담회에서 “필요하면 (남북) 정상회담도 할 수 있다”고 밝힌 이후 정부 안팎에서 나타난 정상회담 추진 징후와 맞물려 주목된다.
무엇보다 그동안 남북 정상회담 추진설이 나올 때마다 적극 부인하던 정부가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부터가 달라진 분위기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지난달 25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정상회담 추진 시도가 있는지 없는지는 공개된 자리에서 밝힐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김 총리는 ‘비공개로 말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경우에 따라 그럴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부 당국자는 남북 간 접촉을 사실상 시인하기도 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7일 일본 아사히신문의 남북 비밀접촉 보도에 대해 “북한 통일전선부를 만났다고 돼 있는데 통전부가 과거보다 힘이 떨어졌다”며 “우리 내부에 일부가 북한과 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통전부 라인과의 접촉에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는 취지였지만 정상회담을 둘러싼 남북 간 접촉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이처럼 정부 내에 묘한 기류가 형성된 것은 남북관계에서 정상회담이 갖는 파괴력에 대한 정부 내 고민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 이후 꼬인 한반도 현안과 북핵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기엔 정상회담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정부 안팎에서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 핵심부에선 올해 정상회담을 상반기에 하느냐, 아니면 10월경에 하느냐를 두고 의견이 갈려있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북한과의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시간이 갈수록 북한의 핵 보유량만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핵 확산 방지를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정한 미국 정부의 간접적인 압박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현 장관이 이날 “지금 북한은 핵 국가의 문턱에 이르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지적이다.
물론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태도는 아니다. 조건이 맞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정상회담을 한다면 사실상 올해밖에는 기회가 없어 정상회담을 둘러싼 미묘한 기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노무현 정권이 임기 마지막 해에 정상회담을 열어 부담을 안겼다고 비난했던 현 정권으로서는 정상회담을 한다면 올해 해야 한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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