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최종본(수정본)은 왜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지 않았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복사해 가져간 이지원에는 어떤 경위로 최종본이 보관돼 있었던 걸까. 검찰 수사와 노무현재단 측 설명, 본보 취재 결과 등을 통해 회의록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지고 수정되고 삭제됐으며 다시 봉하 이지원에 보관됐는지를 추적해 본다. 》 ○ 정상회담 회의록 생성 및 결재
노무현 정부는 2007년 10월 4일 열린 남북정상회담 직후 녹음파일을 국가정보원으로 보낸다. 국정원이 만든 초본(녹취록)은 청와대 조명균 안보정책비서관에게 전달됐고, 녹취 상태가 불량한 부분 등에 대해 몇 차례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수정 작업이 이뤄져 1차 완성본이 만들어진다.
1차본은 조 전 비서관의 상관인 백종천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명의로 10월 9일 이지원을 통해 노 전 대통령에게 결재가 상신됐다. 노 전 대통령은 열흘 뒤인 19일 회의록을 열람했다. 이지원은 대통령의 열람을 통해 결재가 완성되는 방식이다. 노 전 대통령은 결재하면서 ‘내 의도와 다른 것 같다’며 회의록 수정을 지시했다. 검찰은 봉하마을 이지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수정 지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수정을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을 낮춰서 ‘저’라고 한 부분이 ‘나’라고 바뀌는 등 수정된 최종본이 이지원에 등재됐고, 1차본은 삭제됐다. 국정원으로도 보내진 최종본은 6월 24일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공개했다.
○ 회의록 지정기록물 지정 및 폐기 지시
검찰이 확보한 동영상 회의자료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2008년 1월 청와대에서 기록물 재분류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 노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 회의록 최종본에 대해 “삭제하든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하든가”라고 했다. 임상경 전 기록관리비서관이 “이지원에서는 삭제가 안 됩니다”라고 하자 노 전 대통령은 “아니 삭제하라는 건 아니고, 지정물로 하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녹화돼 있다고 한다. 회의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은 “(나한테) 안 좋은 이야기, 불리한 거는 지정물로 묶자”는 발언도 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최종본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될 지정기록물로 분류된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이후 조 전 비서관을 따로 불러 “최종본을 국정원에서만 보관하라”는 취지로 지시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한 조 전 비서관의 검찰 진술은 계속 바뀌었다. 1월에는 “삭제 지시가 있었다”고 진술했다가, 7월에는 “국정원에만 보관하라는 지시였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다 5일 조사 때는 “종이 문서를 폐기하라고 한 것이며, 국정원에도 보관하라고 했다”고 다시 진술을 바꿨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지시 없이 회의록이 폐기됐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이전 진술에 무게를 두고 수사하고 있다.
○ 회의록 최종본 폐기 과정
검찰은 최종본 폐기는 조 전 비서관이 실무자를 시켜 진행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이지원 기록물보호체계 구축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청와대는 2008년 1월 한국정보화진흥원에 의뢰해 이지원에 53개 항목을 삭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이 최종본 삭제 이후 청와대 이지원을 복사해 만든 ‘봉하마을 이지원’에 ‘(노 전 대통령) 혼자만 보십시오’라는 메모와 함께 최종본을 올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회의록 최종본은 봉하마을 이지원과 국정원에 남게 됐고, 국가기록원으로는 이관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경수 전 대통령연설기획비서관은 9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상회담 회의록(1차 완성본)은 중복문서로 판단해 표제부(목록)만 지운 것이다. 문서 자체를 지운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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