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등 기록물을 재분류하는 2008년 1월 청와대 회의에서 “(나한테) 안 좋은 이야기, 불리한 거는 지정물로 묶자”는 말을 한 사실을 검찰이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분류되면 15년간 사실상 열람이 불가능해진다.
9일 사정 당국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발언 장면이 담긴 동영상 회의자료를 국가기록원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청와대에 보관 중인 기록물들을 △국가기록원에 넘길 것 △청와대에 남길 것 △봉하마을로 가져갈 것으로 분류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이 동영상 회의자료에는 노 전 대통령이 이지원(e知園·청와대 문서관리시스템)에 등재돼 있던 정상회담 회의록 등과 관련해 “삭제하든가 지정하든가”라고 하자 임상경 전 기록관리비서관이 “이지원에서는 삭제가 안 된다”고 했고, 노 전 대통령은 “삭제하라는 것은 아니고…”라고 말하는 장면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날 회의에서 정상회담 회의록은 노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지정기록물로 분류됐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조명균 전 안보정책비서관에게 “국가정보원에서만 회의록을 보관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따라 2008년 1월 이지원에 삭제 프로그램이 설치된 뒤 회의록 최종본(수정본)이 삭제됐을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정상회담 회의록 이외에도 100여 건의 문건이 이지원에서 삭제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조명균 전 비서관이 이지원에서 삭제된 회의록 최종본을 별도의 파일로 보관하고 있다가 ‘봉하마을 이지원’에 따로 올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회의록을 올리면서 노 전 대통령에게 ‘혼자만 보십시오’라는 메모를 첨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조 전 비서관이 정상회담 직후인 2007년 10월 4∼8일 국가정보원과 협의해 작성한 회의록 1차 완성본을 이지원을 통해 2007년 10월 9일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노 전 대통령은 ‘난 이렇게 이야기한 적 없는데 왜 이렇게 정리돼 있느냐. 내 의도와 다른 것 같다. 수정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10일 만에 결재한 사실을 확인했다.
노무현재단 측은 임 전 비서관이 기록물 재분류 회의에 참석한 것과 관련해 “임 전 비서관은 2007년 12월 대통령기록관장으로 임명돼 대통령비서관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기록물 재분류를 위한 회의였던 만큼 임 전 비서관이 참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은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이 불리한 내용을 지정기록물로 분류하려 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출처가 불분명한 자료로 노 전 대통령을 흠집 내는 행태는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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