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 일본 와세다대 심포지엄 기조연설
“북한의 비핵화 의제는 원칙은 일괄타결하되, 이행은 단계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북한을 그대로 보고 이야기를 잘 경청해 정상국가로 유도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 비핵화 의제는 포괄적·일괄타결 외에 다른 방안은 없다.”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31일 4월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북-미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북한의 비핵화 의제와 관련해 이렇게 단언하고 “다만 이행과정에서는 현실적이고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 특보는 이날 도쿄 와세다(早稻田)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한반도 핵 위기-대화에 의한 해결은 가능한가’ 주제의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견해를 밝혔다.
그는 “북한의 비핵화 과정인 동결, 신고, 사찰, 검증, 폐기는 순차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며 “원칙에 있어서는 일괄타결로 나가되 이행에 있어서는 단계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우리도 한꺼번에 줬다가 북한이 말을 안 들으면 손해인 만큼 단계별로 주고받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 특보는 북한이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서의 남북 교류협력 방안에 대해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에서 합의한 48개 교류협력사업을 검토해보니 최소한 20개는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와 관계없이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인도적 지원, 나무심기 사업, 결핵환자 지원 등을 그 예로 들었다. 그는 “북한이 원하는 만큼은 아닐 수 있지만 제재 체제 안에서 지원을 해줄 수 있다”며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구체적인 행보를 보이면 우리 정부가 중국, 미국과 함께 유엔에 제재 완화를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이 문재인 정권 초기에 실시되는 만큼 남북 정상이 정례적으로 만나는 셔틀외교도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북한의 비핵화 행보에 달려 있다는 것을 전제로 “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1년에 한두 번씩 남북 간 정상외교를 한다면 남북 관계에 상당히 많은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 특보는 “남북 정상회담은 성공하겠지만, 북미 정상회담은 변수가 너무 많아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다”며 “그럼에도 우리는 이 기회를 포착해 앞으로 3개월 간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데 모든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 문제에 대해 낙관론도, 비관론도, 회의론도 존재하지만 모두 비현실적”이라며 “남북 회담을 잘 준비하되, 그 과정에서 북한을 그대로 보고 이야기를 잘 경청하고 북한을 정상국가로 유도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1월 이래 북한을 정상국가로 대접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북한을 실제 정상국가로 행동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이종원 와세다대 교수,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교수 등 일본 내 한반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일본의 한반도 관심이 많은 학자와 시민, 기자들이 420석 강연장을 가득 메웠다.
문 특보는 ‘북한이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경우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 “국내 정치가 혼란스러워지고 동북아 정세가 불안정해질 테니 문 대통령이 이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폐기하면 주한미군의 철수를 검토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딱 1번 쏜 ICBM 대신, 내미는 주한미군 철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의 연방제 방식 통일 구상과 관련해서는 “통일 방안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2개 주권을 가진 남과 북 사이에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오가며 사실상의 통일 상황을 만드는 ‘남북연합’”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한국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내되 결정적인 공적은 북-미 정상회담에 남겨줘 트럼프 대통령에게 (결정적 공로를) 돌리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토론자로 나온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요즘 한국 인터넷에는 ‘트럼프에겐 노벨평화상을, 한반도엔 평화를!’이란 슬로건이 등장했다”고 소개해 웃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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