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 여민관 3층 소회의실. 문 대통령이 핵심 참모진과 수석·보좌관회의를 하던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축전이 왔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축전에는 “큰일 해내셨다. 노벨 평화상 받으시라”는 이 여사의 덕담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축전을 보고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의 성패가 결판날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공(功)을 또다시 치켜세우고, 비핵화와 종전선언을 위해 북-미 간의 중재 역할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 김정은에게 경제협력 담은 USB 건넨 文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담은 책자와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를 직접 건넸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 도보다리 회담에서 발전소 등 남북 전력협력에 대해 논의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자 “구두로 논의한 적은 없지만 김 위원장에게 자료를 하나 넘겼는데 거기에 (발전소 관련 내용이) 담겨 있다”며 “신경제 구상 책자와 프레젠테이션 영상을 (USB에 담아) 김 위원장에게 건네줬다”고 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는 문 대통령의 남북 경제통일 구상의 핵심 정책. 동해권·서해권·비무장지대(DMZ)의 3대 벨트를 축으로 한 에너지, 철도 협력 구상을 담았다. 김정은에게 건넨 USB와 책자는 문 대통령이 직접 청와대 참모들에게 준비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남북 정상회담 후속조치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주길 바란다.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며 대북제재로 시작할 수 없는 남북 경협사업은 일단 남북 공동 조사연구부터 시작할 것을 지시했다.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초기 작업을 시작해 남북관계 복원의 못을 박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여전히 북한에 선(先) 핵포기를 요구하면서 비핵화 보상에 대한 논의를 뒤로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제시하면서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붙들겠다는 포석이기도 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비핵화를 달성하면 북한에 어떤 밝은 미래가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는 차원에서 준비된 것”이라며 “당장 경협을 하겠다는 것이라기보다는 북한이 적극적으로 비핵화를 추진하면 북한이 원하는 경제적 기회가 있다는 점을 보증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 남북미 3각 채널로 비핵화 논의 틀 강화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미 3각 대화채널을 긴밀히 가동하고 국제사회의 지지 확보 노력도 병행하길 당부한다”고 말했다.
남북미 3각 대화채널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및 북한 통일전선부 라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미의 안보 및 정보 라인을 실시간으로 연결해 북-미가 정상회담을 계기로 비핵화 로드맵을 완성하도록 중재하겠다는 것.
김정은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완전한 비핵화와 강화된 검증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그 대가로 종전선언과 북-미 수교를 요구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종전선언에 대해선 지지를 밝혔지만 북한이 먼저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리비아식 해법을 고수하고 있다. 비핵화의 최종 출구가 완전한 비핵화와 종전선언이 돼야 한다는 접점을 찾았지만 협상 출발점은 여전히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이 미국과의 소통을 더욱 강화하라고 지시한 것은 핵 폐기를 요구하며 북한에 대한 불신이 아직 남아있는 백악관을 상대로 “한국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연대 보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당기려고 하는 등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만큼 북-미 대화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회의에서 “남북합의 체결 비준 공포 절차를 조속히 밟아주길 바란다”면서도 “다만 국회 동의 여부가 또다시 새로운 정쟁거리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해 국회에 남북합의서 체결 비준 절차를 진행하되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만큼 야당과의 극단적인 대치 속에 국회에서 합의서를 처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은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합의가 윤곽을 드러낸 뒤로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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