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을 방문한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에게 “북한은 대화 복귀를 통해 상호 신뢰를 수립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을 탐구, 토론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밝혔다.
○ 중국, 주한미군 철수 제기한 듯
중국은 이 ‘근본 원인’이 주한미군이라고 봐 왔다. 주한미군 철수 논의 의사로 해석될 수 있는 ‘근본 원인 제거’를 김 위원장이 거론했다고 중국 측이 공개한 데는 주한미군 철수가 필요하다는 중국의 바람이 반영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접촉 과정에서 주한미군을 용인할 수 있다는 뜻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왕 위원을 통해 평화체제 구축에는 주한미군 철수 논의가 필요함을 강조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가 끝이 아니라 한미동맹 등 미국 중심의 양자동맹을 ‘냉전 질서’로 보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체해야 한반도 평화체제가 진정으로 구축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중 밀착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 문제 등 향후 협상 의제에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비핵화·평화체제 협상 과정에서 ‘중국 배제(패싱)’를 막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 마음 급한 중국, 김정은 만나자마자 공개
중국 외교부는 왕 위원이 방북 이틀째인 3일 오후 김 위원장을 만나자마자 4시 11분(현지 시간) 웨이보(중국의 트위터 격) 공식 계정에 “방금 김 위원장이 왕 위원을 만났다”며 회동 사실을 알린 데 이어 김 위원장과 왕 위원이 웃으며 손을 맞잡고 있는 사진들과 함께 대화 내용을 상세하게 전했다.
왕 위원은 김 위원장에게 “한반도 종전(終戰) 및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중국 측 발표에는 없었지만 그간 중국이 1953년 정전협정의 당사자임을 강조해 온 점으로 볼 때 ‘평화체제 구축에 남북미만 참여하는 3자회담은 안 되며 중국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김 위원장에게 요구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 위원은 이날 평양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북남 지도자의 성공적인 회담과 기념비적 판문점 선언 발표를 축하하고 지지한다”고 밝혔다. 왕 위원은 종전 및 평화체제 전환 지지와 함께 “북한이 전략의 무게중심을 경제 건설로 돌린 것, 북한이 비핵화 추진 과정에서 정당한 안보 우려를 해결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어 왕 위원은 “중국은 이 과정에서 북한과 소통을 유지하고 협조를 강화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종전체제와 평화체제 전환의 ‘목표’는 지지하되 그 ‘방법’은 반드시 중국이 참여하는 남북미중 4자회담이 돼야 한다고 김 위원장에게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왕 위원은 김 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상에게 중국이 관련 논의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북한 측은 분명하게 수용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 측 발표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북한은 중국이 한반도 평화 안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공헌한 점을 높게 평가한다”며 “중국과 전략 소통을 강화하기를 원한다”고만 말했다.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은 북한의 굳건한 입장”이라고 재차 비핵화 의사를 밝혔다.
왕 위원은 “북한이 시기와 정세를 잘 판단해 과감한 정책 결정으로 한반도 정세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고 평가했고, 김 위원장은 “북한은 중국과 함께 북-중 우호 관계가 새롭고 더 높은 단계로 내딛기를 원한다”고 화답했다.
○ 북-중 접경지역 제재 완화되나
왕 위원은 2일 리 외무상과의 회담에선 3월 말 시 주석과 김 위원장 간 정상회담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를 의식한 듯 거론되지 않았던 ‘북-중 경제 무역 협력 추진’까지 언급하며 대북 제재 완화를 시사했다. 왕 위원은 리 외무상에게 “양국 지도자의 중요한 합의를 확실히 실행에 옮겨 중북 양측의 실질적인 경제 무역 협력을 추진해 양국 관계에 새로운 활력을 주입하자”고 말했다. 북-중 무역은 현재 대북 제재로 크게 위축된 상태이기 때문에 경제 무역 협력은 대북 제재가 완화돼야 가능하다. 북-중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중국이 대북 제재를 완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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