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일 “북-미 회담 날짜와 장소를 곧 발표하겠다”고 말했지만, 발표가 계속 늦어지고 있다. 5일에도 “시간과 장소 결정을 모두 마쳤다. 우리는 날짜를 갖고 있다”고 말해 궁금증을 키웠다. 이 때문에 미국과 북한이 여전히 협상 발표 내용과 장소를 둘러싸고 치열한 물밑 기싸움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 회담 날짜 장소 발표 왜 미룰까
현재 북-미 간엔 미국의 달라진 북핵 폐기 조건이 돌발 변수로 떠올랐다. 마이크 폼페이오 신임 미 국무장관은 최근 취임사에서 북핵 문제 해결의 원칙으로 기존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대신 ‘PVID(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라는 개념을 언급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29일 “북한과 논의할 것이 과거보다 많아졌다”며 북한이 보유한 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 등을 핵과 함께 폐기할 대상으로 거론했다.
이렇게 미국이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를 공약한 북한이 반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완전한 핵 폐기’는 핵무기 폐기만 확인시키면 됐지만, ‘영구적 핵 폐기’라는 조건엔 북한이 보유한 핵 기술자와 연구데이터에 대한 조치까지 모두 포함된다. 북한의 핵 기술자는 수천 명에 이른다. 이들을 다른 연구에 돌리겠다고 하면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렵고, 감시가 용이한 해외에 보내는 것은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다.
북한 외무성이 6일이 일요일임에도 이례적으로 “미국이 우리의 평화 애호적인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우리에 대한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미국의 요구가 훨씬 강화된 데 따른 반발로 해석된다.
○ 회담 장소로 보는 북-미 협상 결과
트럼프 대통령이 날짜와 장소를 정했다면서도 이를 발표하지 않는 것은 물밑 협상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회담 시점과 관련해 지난달 9일 “5월에서 6월 초”라고 했다가, 지난달 30일에는 “3∼4주 이후”라고 바꿨다. 말대로라면 5월 25일 전에 열려야 하지만 한미 정상회담이 22일로 잡히면서 북-미 회담은 6월 이후에 열릴 가능성이 커졌다.
회담 장소도 판문점과 싱가포르로 좁혀졌다는 설이 나오지만, 이 역시 물밑 협상을 보고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결정할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징성을 고려해 판문점을 선호하고 있지만 참모들은 반드시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부담이 있는 판문점 대신 회담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고, 경호와 행사 진행에 무리가 없는 싱가포르가 최적지라고 건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미국이 제시한 조건을 북한이 전폭 수용하면 회담 장소를 북한의 요구대로 양보해줄 수 있다. 하지만 사전조율이 신통치 않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대로 ‘언제든 회담장을 박차고 나와 쉽게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싱가포르가 유력해 보인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전미총기협회(NRA) 연례총회 연설에서 “지금 북한 문제에 대해 정말 잘하고 있다”며 “나는 지금은 (북한을 비난하는) 레토릭을 구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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