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북한 재건에 통찰력을 더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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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미래형 국가로 도약시키기 위해선 선택과 집중을 통한 지역 개발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 지도는 개인적으로 상상해 본 북한 권역별 스마트 메가시티 조성 구상이다.
북한을 미래형 국가로 도약시키기 위해선 선택과 집중을 통한 지역 개발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 지도는 개인적으로 상상해 본 북한 권역별 스마트 메가시티 조성 구상이다.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요즘 남한 언론을 열심히 본다고 하니,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위시한 북한 지도부가 이 글도 자세히 읽어줬으면 좋겠다.

북한이 북-미 수교를 통해 정상국가로 나가면, 남한과 국제사회의 투자도 활발해질 것이다. 역사상 처음 오는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절대로 허겁지겁 지원을 받아오는 것에만 급급해선 아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지도자의 통찰력과 결단에 따라 똑같은 지원으로 몇 배의 효과를 만들 수도 있고, 물에 풀린 설탕처럼 지원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평소에 북한 개발과 관련해 생각했던 것 중 세 가지만 적어본다.

첫째로, 1석2조의 효과가 나는 분야에 외부의 지원을 집중하길 바란다.

실례를 든다면, 남북관계 개선과 더불어 남쪽에선 한반도 통합 교통망 실현이 우선적 과제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담당 부처인 국토교통부에서 지난해 만든 ‘한반도 통합철도망 마스터플랜’을 보면 비전문가인 나는 이해 불가다. 경의선 고속철도 건설 비용을 무려 24조5100억 원으로 계산했다. 노선 길이는 더 길고, 터널과 교량이 70%나 되는 경부선 고속철도(KTX) 건설에도 20조 원 정도 든 걸로 아는데, 평야가 대다수인 경의선이 더 비싸다.

북한에선 총사업비의 30∼50% 정도인 토지 수용비도 필요 없고, 인력은 값싸고, 환경영향평가나 반대 시위와 같은 사회적 비용 지출도 없다. 중국의 고속철 km당 건설비를 단순 대입해도 10조 원 이상 나올 수 없다.

그럼에도 남쪽에서 24조 원을 투자해주겠다면, 북쪽은 여러 필수 사업을 철도 건설과 동시에 해결하면 된다. 가령 이왕 땅을 파는 김에 지하에 가스관과 전력선을 함께 묻게끔 설계하고, 그 위에 고속도로와 철도를 같이 건설할 수 있다. 1석3조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도로 밑에 전력선을 묻으면, 나중에 자동충전식 자율주행차 도로로도 쉽게 개조할 수 있다.

둘째로, 대담하게 농경사회에서 벗어나 ‘스마트 메가시티’ 시대로 도약하길 바란다.

현재 북한의 농축산·어업 종사자는 약 440만 명. 가족까지 포함하면 농촌에 1000만 명 이상 묶여 있다. 그런데 1년 곡물 생산량은 500만 t도 안 된다. 농가 인구 530만 명이 매년 곡물 4억 t 이상을 생산하는 미국과 비교하면, 북한 농업은 비효율의 극치다. 북쪽은 농사에 적합한 지형도 아니다. 농촌을 버려야 북한이 산다.

강력한 인구 이동 통제 정책으로 북한의 도시화율은 남한의 1970년대 수준에도 한참 못 미친다. 남한의 현재 도시화율은 90%에 육박한다. 도시화 진행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북한도 빨리 도시화를 해야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재건비가 많이 드는 낡은 소도시와 농촌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스마트 메가시티’를 받아들여 도입해야 한다. 정보기술(IT) 강국인 남한은 이를 도울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

북한은 인구 300만 명 규모의 권역 6개 정도만 집중 건설해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

동해엔 인구 수억 명의 중국 동북 지역을 배후로 한 청진-나진 권역, 자원 개발이 유망한 단천 권역, 일본을 겨냥한 함흥-원산 권역을 키우면 된다. 또 서해엔 남쪽과 협력하는 해주-개성 권역, 중국을 배후로 한 신의주 권역, 대규모 공단 조성이 가능한 평양-남포 권역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지역을 선택해 투자를 집중하면 막대한 개발비를 줄일 수 있다.

셋째로, 자존심을 버릴 땐 과감히 버려야 한다. 가령 현재 북한에 제일 시급한 것은 전력인데, 발전소를 새로 건설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든다. 반면 남쪽은 1년에 며칠을 제외하면 1000만 kW 이상의 전기가 남아돈다. 200만 kW로 버티는 북한이 흥청망청 쓰고도 남을 양이다. 남한도 전력 공급을 중단하면 북한이 순식간에 멈춰 서는, 일종의 대북 지렛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전력 공급에 인색하진 않을 것이다. 북한에 충분한 발전소를 지을 때까지 자세를 낮추며 남한과 사이좋게 지내면 북한 경제를 최대한 빨리 재건할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다. 북-미 수교에 자신이 있다면, 이제 경제 및 국토개발 계획도 제대로 상상하며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북한이 고속 성장의 기적을 쓰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 재건#한반도 통합 교통망#스마트 메가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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