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가 급진전되면서 문화재 공동 발굴, 연구 계획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중구난방식이면 북한 측에 연구비 명목의 현금만 건네질 뿐 성과를 제대로 얻어내지 못할 공산이 큽니다.”
고인돌 전문가로 2001∼2014년 북한을 10여 차례 방문해 고인돌과 고조선 유적을 조사한 경험이 있는 하문식 세종대 역사학과 교수(58)가 최근 달아오르는 남북 역사연구 교류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14일 하 교수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조선사회과학원 산하 조선력사학회와 조선고고학연구소가 남측 학자들을 상대한다. 그러나 남측은 공동 연구를 하려는 역사 관련 기관, 학술단체가 상당히 많다. 북측은 연구·발굴 주제 하나를 놓고도 “얼마에 할 거냐”는 식으로 돈을 많이 제공하겠다는 곳을 골라가며 사업비를 높인다는 것이다. 성사를 가르는 건 ‘북측에 건네는 현금 액수’라는 게 하 교수의 설명이다. 현물로는 ‘노트북 컴퓨터’를 선호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남북 학술교류에서 기여한 만큼의 성과를 얻으려면 우리 측 학자들의 요구도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게 하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남측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공동 발굴과 연구 관련 협상에서 북한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례로 남북 공동 발굴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개성 만월대 발굴에서 남측이 얼마나 성과를 얻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만월대에서 발굴한 고려 유물을 갖고 와서 평창 올림픽 기간에 전시하자고 제안했는데 무산됐잖아요. 우리가 인력과 발굴, 연구비용에서 큰 기여를 했는데, 전시 요구는 반영이 안 된 거죠.”
남측은 만월대에서 남북이 함께 발굴한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등 유물을 남쪽에서 전시하자고 올해 1월 제안했다. 그러나 북측은 시일이 촉박하고, 절차가 복잡하다며 거절했다. 결국 이 전시에서 북측 유물은 사진 등으로만 전시됐다.
하 교수는 기존에 진행했던 남북 협력 사업의 성과를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했다. “유네스코를 통해 북한의 문화재 보존을 지원했잖아요. 관련 장비도 지원해 들여놨는데 데이터도 제공이 안 되는 걸로 압니다. 또 다른 사업도 연구 중간보고서마저 제대로 나오지 않았어요. 인력과 자원이 투자됐으면 잘 진행되고 있는지 상황을 보고하는 문서가 나와야 하지 않나요?”
한편 하 교수는 북한 고인돌·고조선 유적의 공동조사 필요성도 제기했다. 북한 학계는 고인돌의 덮개돌을 들어낼 장비와 예산이 부족해 땅을 파고들어 가며 발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유적의 훼손이 일어날 소지가 크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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