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3시경, 문재인 대통령이 탄 은색 벤츠 승용차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판문점 북측 통일각 현관 앞에 도착했다. 지난달 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손을 잡고 MDL을 10초가량 넘었던 문 대통령이 한 달여 만에, 이번에는 정식으로 북측 지역을 방문한 것. 현직 대통령이 통일각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한 달여 만에 다시 만난 南北 정상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1시경 청와대를 출발해 판문점으로 향했다. 청와대는 “지난달 정상회담과 같은 경로로 판문점으로 이동했다”고 밝혔다. 서울 도심을 지나 자유로, 통일대교를 거치는 경로로, 청와대는 회동 사실이 알려질 것을 우려해 이번에는 교통 통제도 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교통이 혼잡한 주말에 통제를 안 한 것은 이례적이지만 일종의 암행 경호는 있었다”고 전했다.
판문점 내에서 문 대통령이 통일각까지 이동한 경로는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뒤 김정은이 돌아간 길과 같았다. 문 대통령이 탄 차량은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 오른편 도로를 거쳐 비포장 상태인 MDL을 넘었고, 북측 판문각 앞 도로를 지나 통일각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문 대통령은 가장 먼저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악수를 했다. 문 대통령은 회동이 끝나고 통일각을 떠나기 전에도 멀리 떨어져 있던 김여정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북한군 의장대의 약식 사열을 거친 문 대통령은 통일각 로비에서 기다리던 김정은과 만났고, 이어 서명대에 앉아 방명록을 작성했다.
○ 文 “김정은, 한국에서 인기와 기대 높아져”
통일각 좌측에 마련된 회담장에 입장한 남북 정상은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눴다. 25일 전격적으로 회동을 제안한 김정은은 “오늘 이렇게 갑자기 만남이 된 것”이라며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4·27 때도 외신들이 꼽은 명장면 중 하나가 (문 대통령이) 넘어오는 것 아니었나”라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우리 김 위원장님은 한국에서도 아주 인기와 기대가 높아졌다”며 “김 위원장이 남북 사이에 함께 평화 번영을 이끌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달 정상회담에서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김여정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배석했지만 이번에는 서 원장과 김영철만 배석했다. 급박하게 회동이 이뤄지면서 남북 수행단의 규모도 대폭 줄었다. 북측에서는 김여정, 김영철만 나섰고 우리 측에서는 서 원장 외에 주영훈 경호처장, 김상균 국정원 2차장,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송인배 제1부속비서관이 따라갔다.
대부분의 일정이 생중계됐던 지난달 정상회담과 달리 이번에는 아예 언론에 알리지 않았다. 청와대는 자체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언론에 제공했고, 영상에는 두 정상의 모두발언 외에는 육성이 담기지 않았다.
또 비핵화 이슈를 논의하기 위한 ‘원포인트 실무 회동’인 만큼 만찬, 문화 공연 등의 일정도 없었다. 이를 의식한 듯 김정은은 “좋은 자리에서 맞이하고 제대로 된 의전 차량으로 맞아야 하는데, 장소도 이렇다. 잘 못해 드려서 미안한 마음”이라며 “가을 초에 평양으로 오시면 대통령 내외분을 성대하게 맞이하겠다”고 말했다.
○ 南 ‘북한산’ 그림에 맞춰 北도 ‘백두산’ 그림 준비
두 정상이 다시 만난 통일각은 1985년 완공된 지하 1층, 지상 1층 건물이다. 판문점 북측에서 남북 회담이 열릴 때 주로 사용되는 곳으로 지난달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남북 실무회담도 통일각에서 열렸다. 청와대는 “3층 건물인 남측 평화의집에 비해 층수가 낮지만 면적이 넓고 층고가 높다”고 설명했다.
북측은 이번 정상회담을 위해 통일각에 백두산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배치했다. 이는 지난달 정상회담에서 청와대가 북한산 그림 등을 평화의집에 마련한 데 따른 조치로 보인다. 실무회담에 참여했던 정부 관계자는 “회담장의 배경인 백두산 천지 그림은 당초 없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북측도 그 나름대로 준비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시간가량의 회동을 마친 뒤 문 대통령은 삼지연에서 바라본 백두산 그림이 걸려 있는 로비를 지나 차량에 탑승했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 복귀한 뒤인 오후 7시 50분, 청와대는 두 번째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비로소 언론에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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