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간 수뇌(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그간 반대했지만 이제 한반도에 새 변화의 물결이 시작된 만큼 남조선의 가입에 찬성한다.”
7일(현지 시간) 오전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에서 열린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장관회의. 이날 1번 안건으로 한국의 정회원 가입안이 상정되자 장혁 북한 철도상은 가장 먼저 발언권을 신청한 뒤 이렇게 말했다. 회의장 내 다른 회원국 대표단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부터 추진했으나 매년 북한의 반대로 고배를 마셨던 한국의 정회원 가입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OSJD는 폴란드, 러시아, 중국, 북한 등 유라시아 대륙 철도가 지나는 국가들이 가입한 국제기구다. 정회원이 되면 이들 기존 정회원인 28개국과 화물이나 여객 운송에 관한 협정을 일괄 체결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유라시아 철도를 활용한 우리 화물의 물동량이 늘어나는 효과가 기대된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 등 유라시아 철도의 운영 방식을 결정하는 데도 참여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신(新)북방정책’의 하나로 TSR 등 대륙철도 이용 활성화를 위해 OSJD 가입을 추진해 왔다. 한국 기업들의 TSR 수요가 늘어나는 반면 통관 절차가 복잡하고 운임이 불안정한 점 등 문제가 많다는 지적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북방경제협력위원회’는 철도, 조선, 항만, 북극항로, 가스, 전력, 일자리, 농업, 수산 등 북방경제협력을 위한 ‘9개의 다리’를 구체화하는 방안의 하나로 2021년까지 OSJD 가입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은 당초 OSJD의 만장일치제 정관을 다수결 방식으로 개정하도록 유도해 북한 반대를 우회하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4·27 판문점 선언 등 남북 간 협력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예상보다 일찍 정회원의 꿈을 이뤘다. 이달 1일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OSJD 가입 문제는 정식 의제가 아니었지만 한국 측의 협조 요청에 북한 대표단은 “잘 알고 있다.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5일 키르기스스탄에서 장관회의가 시작된 이후 한국 대표인 손명수 국토부 철도국장은 북한을 포함해 러시아, 중국 등 회원국 대표단을 개별적으로 만나 협조를 요청했다. 이때 북한 대표단은 “잘될 것 같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이번 OSJD 가입으로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도 탄력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서해안과 동해안, 비무장지대(DMZ)를 H자 형태로 개발하는 이 구상은 남북 철도를 대륙철도까지 연결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엄구호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장은 “이번 정회원 가입으로 남북 관계 개선과 철도 협력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확인하는 동시에 한반도와 유라시아 대륙의 철도 통합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제 국제철도시대로 가는 첫 문턱을 넘은 만큼 관련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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