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평양 공동선언에 담긴 비핵화 관련 합의는 향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재방북에 따른 비핵화 협상 재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를 결정지을 키워드가 될 듯하다. 워싱턴이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판도는 전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외교정책의 최종 결정권을 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반응은 나쁘지 않다. 그는 19일 평양 남북 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1시간 만에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이 최종 협상에 따라 핵사찰(nuclear inspections), 그리고 국제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영구 폐기하는 것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미국 현지 시간으로 자정을 막 넘긴 때였는데도 반응을 내놓은 것. 그만큼 회담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로켓과 핵 실험은 더 이상 없고, 전쟁영웅들도 계속 송환될 것”이라고 썼다. 남북한이 2032년 올림픽 공동 개최를 추진한다는 소식을 전하며 “매우 흥미롭다!”라고 했다. 그는 이후 폭스뉴스를 인용해 “북한이 비핵화를 재확인했다. 우리는 (여기까지 오느라) 먼 길을 왔다”는 문장을 트위터에 추가로 올렸다.
전문가들은 김정은과의 ‘브로맨스’를 과시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회담 결과를 앞세워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예정대로 추진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백악관은 이미 이달 초 김정은의 친서를 받아들여 “북한과의 정상회담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공식 발표하고 준비 작업에 들어간 상태.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뉴욕에서 열리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후속 협상 내용을 조율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비핵화 자체에는 진전이 없지만 북-미 대화 국면이 살아날 가능성은 생겼다고 평가했다. 국가이익센터(CNI)의 해리 카지아니스 국방연구국장은 “이번 남북회담 결과는 북한과의 대화 지속 및 제2차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워싱턴이 기다리던 신호”라며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올해 종전선언을 해서 ‘한반도 전쟁을 종식시킨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정은이 핵 시설 리스트 신고 등 비핵화를 위한 ‘통 큰 결단’ 없이 사실상 미국으로 떠넘긴 공을 백악관과 국무부 등 관련 부처 내 협상 실무팀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종전선언 대 핵 신고서 제출의 순서와 수위 등을 놓고 평양과 샅바싸움을 벌여온 참모들이 협상의 세부사항을 문제 삼을 경우 정상회담 준비 일정이 줄줄이 지연될 수 있다.
뚜렷한 비핵화 성과가 안 나오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남북한 철도 도로사업의 연내 착공식 및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 검토까지 공동선언에 적시한 부분은 워싱턴 내 대북 강경파들의 격렬한 비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비핵화 협상 회의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미국 정부와 의회는 남북관계 개선의 ‘속도 조절’을 거듭 요구하며 강하게 견제해 왔다.
공화당 중진이자 대북 강경파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3차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의견을 묻는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매우 화가 난다. 문 대통령의 방북은 북한에 최대 압박을 가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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